50억 변호사 포기 김영란, 5개월 11억 안대희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연륜을 쌓아야 한다. 한국은 아직 30대 이립(而立)의 청년기다. 세계에서 7번째로 5020에 든 나라라고 자부하였으나,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기본이 아직도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나라’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청년기다.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나 근대국가로서의 중국은 1949년 모택동에 의해 건국되고 1978년 등소평에 의해 근대화가 시작되어 한참 부국강병을 목표로 일어서고 있는 연소(年少)한 국가다. 세계에서 60대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른 것은 역시 유럽이라 할 것이다. 미국은 유럽만큼은 아니나 지천명(知天命)의 50대에는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하기야 히틀러의 독일이나 드골의 프랑스,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도 국가개조만큼의 처절한 진통을 겪었다.
한국도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표로서 결정되는 민주주의는 일단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아직도 실험 중에 있다. 우선 국회부터 문제다. 정부가 연중 기능하는 것과 같이 국회도 연중 열려 있어야 됨에도 예산을 다루는 9월 정기국회 외에는 임시국회라는 것은 세금을 걷으려는 국왕과 협상하기 위해 삼부회(三部會)가 열리던 시대의 유습이다. 국회가 열리더라도 의사일정부터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도 민주화 이전 그 과정을 국민의 소리가 들리는 통로로 활용하던 시대의 구태다. 국회가 열리더라도 (소가 웃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위헌요소를 가진 절차로 진행되는 것은 하루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
사법부 문제는 더 심각하다. 판사 임용과정부터가 전근대적이다. 판사는 법조인의 자격을 얻은 후 10년쯤 지나 40대 불혹(不惑)에 이르러서야 임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사법시험에 되자마자 20대에 판사에 임용되던 제도는 사법관료로 국민에 군림하던 일제 잔재다. 더욱 대법관은 판사로서 지천명(知天命)할 수 있는 50대의 연륜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관은 의원이나 장관과는 차원이 다른,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oracle)을 내리는 것과 같은 위상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퇴임 후 전관예우가 상상을 초월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사법부 모든 문제의 총화다.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는 ‘안 되는 것을 되게끔 하기 위해’ 지불하는 수고에 대한 대가 아닌가? ‘김영란법’의 발의자 김영란 대법관은 퇴직 후 50억원이 약속되어 있는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부군 강지원 변호사의 매니페스토 운동(표를 주기 전에 선거공약을 우선 검증하자는 캠페인)과 더불어 법조인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 사례다. 법조인의 청렴은 재조(在朝)와 재야(在野) 전체를 털어 총체적으로 판정되어야 한다. 안대희 총리 내정자의 춘사(椿事)는 명예와 권력과 부를 다 얻고자 하는 수재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아픈 보기다.
국가개조를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전반적인 범국민 각성이 필수적이며 이에는 사회 각 분야 지도자들의 솔선궁행(率先躬行)이 먼저다. 배가 가라앉는 상황 속에서도 ‘Be British!’ 라는 한마디로 질서와 존엄을 찾은 영국인의 국민적 성숙은 대영제국을 만들고 가꾸어 나간 많은 위인들의 각성(覺醒)과 선도(先導)에 뿌리를 두었던 것이다.
‘빨리빨리’가 문제발생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국가개조도 ‘빨리빨리’로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립(而立)이라 하더라도 지도자는 지천명(知天命)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