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청와대 외교안보팀 ‘유감’

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이 연기되자 일본 외무성에서 보였다는 반응이 흥미롭다. ‘당혹하였다’고? ‘유감이다’ 또는 ‘외교적 결례다’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당혹하였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수작이 들통났다는 냄새를 피우고 있지 않은가? 어린 학생들이 담배 피우다가 부모에게 들키자 보이는 반응이 바로 ‘당혹’ 아닌가?

국가간 협정을 국무회의에서 즉석안건으로 처리하였다는 것은 국무총리에게 문제가 있다. 국무회의는 국정의 통일·조정, 국정처리상황 전반의 분석·평가 및 새로운 정책의 수립 등을 위한 정부의 최고 정책심의기관이다. 따라서 각각의 원·부·처에서 올리는 의안에 대한 국무회의 심의가 단순한 요식회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독임제 관청인 국방부에도 군무회의가 있어 충분하고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운용되고 있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나) 군무회의에서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워지면 장관도 결정을 미루고 실무협의를 다시 거치도록 한다.

하물며 국무회의는 헌법기관이다. 흔히들 입법권과 국정조사권을 가진 국회는 존중하면서도 국무회의를 경시하는 풍조와 관행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런 관행들이 누적되어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게끔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것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법으로 명시된 개원일을 뭉개고 있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재정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기 때문에 국회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입법의 범주를 대단히 축소하는 것이다. 국가간 협약에는 조약, 협정, 메모랜덤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들 모두가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회에 보고하는 것이 맞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는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국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갈음하였던 적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각 분야에서 긴밀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찬동한다. 이는 양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이 요망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군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해묵은 문제가 아직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한국이 전략적 동반협력관계를 가지면서도 중국이 한국의 주적인 북한의 동맹국인 한, 한중관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한일정보보호협정에 대해 중국이 불편해 하더라도 엄중한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일본, 특히 일부 우익이 끌어가려는 교묘한 국가 진로 조작에 우리가 방조할 필요는 없다. 핵에 대한 금기도 원자력 관련 법에 ‘안전보장을 위한 이용’이라는 문구를 넣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일본이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NPT 체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핵무장으로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국의 외교관 언론인 전문가들을 접촉해서 경계를 늦추게 하려 한다. 이번의 소동은 이런 야바위가 들통난 데 대한 당혹이다. 외교관, 전문가, 언론인 등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상대국 사정에 정통하며 상대를 설득시키려는 사람과 상대국의 논리와 주장에 세뇌 동화되어 국익에 반하는 행동에 빠지는 부류다. 이번 소동의 진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청와대 외교 안보 스탭은 마땅히 소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전략은 소년 책사들이 주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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