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독일 통일의 교훈
독일통일 문제는 마가렛 대처가 끝까지 자기류의 해결을 고집하였으나 주장이 관철되지 아니한 경우다. 조지 부시나 유럽의 지도자들, 심지어 영국 외무성도 독일의 통일이 불가피하다면 통일된 독일을 통합유럽연방에 붙들어 놓아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반해, 대처는 독일이 일단 통일되면 정치·군사·경제적 영향력이 유럽에 어떤 방식으로든 미치게 되고 결국 독일이 유럽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로 인해 영국의 설자리가 좁혀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다.
대처는 후에 동독을 민주화시키고 경제적으로 성장시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서유럽연합(WEU)의 일원이 되도록 하여 포괄적인 유럽의 안보구조를 형성한 다음 독일 통일문제를 다루자는 것이 자신의 구상이었다고 변명하였다. 통일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이 독일과 서유럽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쳤고 동서독 국민 사이에 패인 골이 아직 크다는 것 등을 지적해 자신의 주장이 보다 현명하고 긴 안목이었다고 말하였다.
대처가 나름대로 서방진영 전체의 안보와 이익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전략을 추구하였다고 하나, 이는 역시 유럽에 대한 영국의 전통적 전략, 분할지배(divide and rule)에 입각하였다고 보는 것이 적확(的確)할 것이다. 이러한 대처의 생각은 1억 독일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러한 반대들을 무릅쓰고 통일의 결정적 계기가 왔다고 판단하자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동의를 얻고, 미테랑을 침묵시키며, 대처를 일축하면서 전격적으로 통일을 성사시킨 콜 수상의 결단력과 기민함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대처는 부시를 설득하여 미·영 특수관계만이 북대서양 동맹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기둥임을 주장하고, 고르바초프에게는 통일된 독일이 소련에 위험이 될 것을 경고하며, 미테랑 대통령에게는 프랑스도 결국 독일의 주니어 파트너(junior partner)로 전락할 것이라며 독일을 제어할 수 있는 Anglo-Franco 제휴를 제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처의 이러한 주장은 독일인의 통일열망과 통일을 역사적 대세로 수용한 부시, 고르바초프, 미테랑 등에 의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대처의 프레임과 패러다임은 시대에 맞지 않았다. 통일 20여년, 독일이 유럽의 중심국가가 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역할은 대처가 우려하던 것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메르켈은 과거의 대처와 같이 병든 유럽을 돕고 지도하는 유모(nanny)가 되고 있다.
콜 수상과 고르바초프가 독일이 나토에 잔류하며(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으며), 독일이 소련군의 철수 비용을 부담하고 러시아의 경제개혁을 지원한다고 빅딜을 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도의 통일을 중국이 수용하게끔 큰 그림을 준비하고 중국의 지도층은 물론, 공중과도 대화를 해둘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미동맹은 중국이 틈을 벌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하고, 연후에 중국과의 신뢰구축과 화친협력을 강구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와 같이, 일본과도 대화(rapprochement)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를 두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도 이웃국과의 우애를 강조한 하토야마 유키오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기대를 걸고 일본의 지사(志士)와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통일은 의지와 전략을 가진 지도자와 국민만이 이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