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10년만에 이룬 라오스 첫승…”이제 다시 시작이다”

라오스 국가대표팀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대회를 모두 마친 후 선수들과 한국인 스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3년 11월 처음 제인내 대표와 연락이 닿은 후 10년이 되었다. 2014년 10월말 SK 와이번스에서 3년의 감독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했다. 그리고는 조촐한 가방 하나 챙겨 어디에 위치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라오스로 향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라오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많이 생각 난다.

제인내 대표(왼쪽)와 이만수 감독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스스로 어떤 감정인지 모를 웃음이 나온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16년간 프로선수로 활동하고 은퇴식도 없이 무작정 미국으로 도망치듯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기억. 그때처럼 힘든 감정을 추스르고 또 다시 낯선 라오스로 향했다. 미국에 갔을 때가 41살이었다. 젊었고 새로운 도전을 겁내지 않을 나이였다. 그런데 프로야구 감독을 했던 내가 동남아시아 최빈국 라오스에 야구 보급을 위해 간다는 것은 젊지도 않고, 새로운 도전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내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라오스 야구선수단과 항저우대회 봉사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40도 넘는 날씨에 야구의 ‘야’자도 모르고 슬리퍼를 신고 운동장에 나온 라오스 친구들이 생각난다. 야구와 축구를 착각해서 야구공을 발로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질 뻔했고, 훈련시간을 알려주면 본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나와 훈련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회의가 머릿속을 채워 나갔다. 라오스에 야구는 불가능한 스포츠였다. 아니 이렇게 더운 날씨에 누가 야구를 하기 위해 땡볕에 운동장에 나오겠는가? 하루 연습했다가 힘들면 다음 날 나오지 않는 선수들이 허다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낯선 이방인이 야구를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날마다 감시카메라로 찍어 상부에 보고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2월말 라오스에서 열린 제1회 DGB배 동남아야구대회 경기장에서 한국 준비요원들이 운동장을 정비하고 있다. 이런 땀과 눈물들이 모여 이번 라오스의 귀중한 1승이 만들어졌다. 

잠시 야구만 가르치고 두번 다시 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같이 하루하루 야구를 하면서 닫혔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꼈다. 불가능해 보이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고 같이 하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해맑은 아이들의 마음과 눈을 보게 되었다. 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며 세상 때 많이 묻은 나의 마음이 오히려 이들로 인해 조금씩 씻겨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야구경기장 입구의 모형들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하다는 의지를 갖고 한번 이들과 부딪혀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메마른 땅에 물을 부으면 금세 물이 증발해서 마르는 것처럼 의미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수시로 한국과 라오스를 왕래하며 젊은 선수들과 같이 야구를 같이 하는 동안 메마른 땅 같아 보이던 라오스 야구에 여린 싹이 솟아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낯선 라오스 땅에 날아가 야구를 보급하니 가장 잘 도와줄 것 같던 교민들이 오히려 모함과 누명을 씌워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거기다가 라오스 정부는 생소한 야구를 가르치는 우리를 경계하며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이들 정부의 도움이 절실해 문을 두드렸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라오스 고위 공무원을 만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랜 설득과 기다림 끝에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 또한 협조적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야구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다. 라오스 대통령으로부터 상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라오스의 제인내 대표와 마주 앉아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면서 그가 한 말이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감독님. 미리 알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솔직히 누군가는 대단한 끈기와 열정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고백하건대 몰랐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 서로가 나누는 무언의 위로였다.

이전엔 사실 “나는 절대 못 할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대답은 “힘들어도 이 길을 갈 것이다”라고 고백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일은 나에게 맡겨진 ‘소명’이기 때문이다.(본문 가운데) 

이전엔 사실 “나는 절대 못 할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대답은 “힘들어도 이 길을 갈 것이다”라고 고백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일은 나에게 맡겨진 ‘소명’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하고 싶은 일도 도전할만 하지만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가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이뤄낸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나는 믿는다.

혼자였다면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의 수고와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힘듦을 알고 라오스 야구를 시작했다. 내 사명이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기에 운명처럼 라오스와 동행을 선택했다.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었고, 쉽게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후회 없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야구를 보급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과 안타까움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렸다가 그 바위가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또 그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시지포스’와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곧 있을 캄보디아에 야구를 전파하는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야구 전파는 메마른 땅에 물을 부으면 금세 물이 증발해서 마르는 척박한 땅에 끊임없이 물을 뿌리고 씨앗을 심는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도 같다. 하지만 메마른 땅은 언젠가 미세한 물을 품게 돼 생명이 움틀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이며, 바위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틈새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인생 끝날 때까지 메마른 땅에 물을 붓는 수고를 기꺼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 씨앗은 단단한 땅을 뚫고 싹이 틀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이번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렇게 기대하고 고대했던 첫승을 싱가포르 팀을 상대로 이루었다. 이번 첫승아 주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위대했다.

내가 살아 생전 라오스 국가대표 팀이 국제대회에서 첫승을 할 수 있을지 늘 의문이었고, 모든 상황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단 한번도 국제대회 첫승 꿈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초라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또 능력이 많이 부족하더라도 갈망하는 자에게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믿었다.

솔직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 팀이 첫승을 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야구한지 이제 겨우 10년 되었고, 또 아시아에서도 꼴찌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당연히 본선에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정예 멤버 18명 대회에 참가했다. 또한 라오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 항저우에 오기 위해선 엄청난 경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할 뿐이다. 본선에 올라가도 고민이고, 본선에 올라가지 못해도 속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인내 대표와 모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라오스 팀이 아시안게임에서 첫승을 한다면 내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모든 경비를 다 책임져 준다고. 그리고 첫승을 한다면 기꺼히 팬티만 입고 라오스 비엔티안 대통령궁 앞에서 여러분과 한 바퀴 돌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첫승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첫승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기부여였다. 내 경우 예순 중반을 넘는 나이지만 라오스 팀이 첫승만 한다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할 자신이 있었다.

라오스 팀이 첫승을 하자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오버랩 되면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10년만에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이날을 학수고대했던가? 모든 스탭과 제인내 대표,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첫승을 올린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을 다시 전한다.

라오스 선수들이 이만수 감독을 헹가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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