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이만수의 항저우발 ‘아내 사랑’ 추석편지
지난 53년, 평생 야구라는 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한길로 달려오고 있다. 아내와 결혼한지도 어느덧 42년이 된다. 평생 운동하는 남편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이 있을 텐데도 언제나 묵묵히 남편 일에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하는 것이 아내다.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며 사랑하며, 인내하며 함께 살아온 고마운 아내다.
지금도 아내한테 미안한 것은 결혼하기 전만 해도 아내 나름대로 많은 꿈이 있었다. 욕심 많은 나는 무조건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약속만 굳게 하고,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국내로 해외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 늘 나에게 결혼해서도 못다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노라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무용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에게 남편의 야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단 한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모든 꿈들을 남편을 위해 포기한 고마운 아내다. 그러면서 아내는 미안해 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프로면 나도 주부로서 프로다.“ 이런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내는 지금껏 남편과 자식들 위해 사랑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살아왔다. 거기다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가족을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아내다.
SK 와이번스 팀에서 물러나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왜 방황하고 있느냐?“ 감독생활 할 때 아내는 내게 “라오스로 가 재능기부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아내의 독려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라오스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라오스로 가 야구를 보급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프로야구 선수시절이나 지도자생활 할 때 안락하고 편안하게 생활했고, 또 좋은 곳 다 다니며 최고급 호텔이나 최고급 음식을 먹었다. 어디를 가나 나를 알아주고, 어디를 가나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라오스에 들어가고부터는 이만수라는 존재를 다 잊고,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의 이만수로 되돌아가야 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남이 사인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나의 정체성을 찾으며 묵묵하게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시켜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월급 한번 아내한테 갖다주지 못하고 평생 야구로 벌었던 재산을 온전히 라오스와 베트남 야구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래도 아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화 내거나 돈 벌어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라오스 들어갔을 때도 아내가 적극 부추겨서 들어가게 되었다. 라오스에 들어간 지 3년 되었을 때 한번은 아내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뭘 먹고 사느냐?“
내가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 보급한답시고 다 퍼주고 지난 3년 동안 일정한 월급도 한푼 갔다주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랬더니 아내 대답이 “숫가락 들지 못할 때 그때 이야기할 테니 그때까지 마음 편안히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를 보급시키라“는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고맙고 멋진 아내인지 다시 한번 아내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내의 이런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이런 영광도 없었다.
참 신기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단 한번도 고정된 월급 한번 없이 강연과 간증, 그리고 광고 수입으로 여기까지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로부터 아무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아직 먹고는 사는 모양이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고정된 월급 없이 라오스로, 베트남으로, 또 대한민국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능기부 할 때도 아내는 단한번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늘 라오스와 베트남에 좀더 야구를 잘 전파할 수 있도록 도움을 넉넉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있다. 재단이 든든하면 좀더 편안하게 야구를 전파하고 그들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알뜰하게 재단을 운영해야 하기에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이번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 팀이 싱가포르 팀을 상대로 첫승을 거두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아내였다. 지난 10년 동안 불평 하나 없이 묵묵하게 남편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는 천사였다.
싱가포르 팀에게 극적으로 승리하자 가장 먼저 아내한테 승전보를 전했다. 어느 누구보다 아내는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 큰 경기인 아시안게임에서 첫승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하고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문제는 앞으로 있을 체류비와 식비 그리고 비행기표 바꾸는 일이 남았다. 이것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11월 22일부터 열흘간 3번째 나라인 캄보디아에 재능기부 하러 들어가기 위해 이미 모든 표와 숙소까지 다 예약했다고 하니 아내는 이제 조금씩 걱정하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까지 헐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제는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며 “제발 스케줄을 절반으로 줄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사랑 때문에 지금도 마음 편안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능기부 할 수 있고, 또 인도차이나반도로 가 야구를 보급시킬 수 있었다. 이번 추석명절도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선수시절에는 그때대로, 또 지도자할 때면 지도자 했다는 핑계로 명절도 그냥 지나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현장을 떠나고 편안하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또 그런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내외 가리지 않고 야구 재능기부 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추석인 오늘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다.
여보~고마워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