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야구’, 라오스역사에 이름 올렸다
9월 28일 저녁 항조우아시안게임 태국-싱가포르 야구경기를 보러 스탭과 선수 모두 경기장으로 갔다. 경기장에 간 것은 다름 아니라 이날 태국과 싱가포르 경기에 따라 라오스가 본선에 올라갈 수 있느냐, 아니면 못 올라가느냐 결정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태국이 이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스탭과 선수들은 본선에 올라가는 것보다 좀더 야구를 구경하고 양팀이 어떻게 플레이 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태국이 싱가포르에 7회 17대0으로 콜드게임승 했다.
라오스 사상 구기종목에서 야구가 처음으로 본선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은 라오스에서 유례 없는 놀라운 일이다. 이에 한국에 있는 라오스 대사로부터 승리의 메시지를 받고, 주라오스 대한민국 정영수 대사로부터도 축하 메시지가 왔다. 라오스 정부에서도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를 전파하기 위해 뿌린 씨앗들이 딱 10년 만에 라오스 야구가 아시안게임 본선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나 야구하는 나조차도 별로 감회가 없을지 모르나 이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이다.
늦은 밤 호텔 침대에 누워 지나온 10년을 되돌아보니 또다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싱가포르에 8대7로 승리한 27일 아무도 없는 코치실에 들어가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지난 10년은 나의 모든 정열을 이들에게 다 쏟아 부은 세월이었다.
나의 정열과 나의 열정, 그리고 나의 삶까지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다 쏟아 부었다. 정신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떻게 10년이 흘러갔는지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를 보급한 것이 10년이나 되었단 말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정말 어제 같았는데….
10년이란 시간들이 이렇게 바람처럼 지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다는 증거다. 비록 몸과 맘이 힘든 일도 있었고, 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다보니 지금 나이의 내가 되었다. 누가 이야기 했던가 “인생은 바람처럼 흘러간다”고.
라오스 국가대표는 27일 중국 샤오싱야구소프트볼스포츠센터 제 1야구장에서 열린 싱가포르와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야구 예선에서 8-7로 이겼다. 전날 태국에 1-4로 패한 우리는 1승 1패로 예선 라운드를 마감했다. 다음날(28일) 태국(2승)이 싱가포르(2패)에 승리해, 라오스 국가대표팀은 3팀 중 2팀에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다.
라오스 국가대표팀은 A조에 편성돼 10월 1일 중국과, 2일은 일본과 경기를 치른다. 마지막 3일엔 필리핀과 맞붙는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낸 두팀이 본선으로 올라간다.
나는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라오스 야구대표팀 ‘스태프 총괄책임자(Head of Staff)’로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했다. 선수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움 주고, 또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가 직접 앞에 나서서 팀과 스탭 그리고 선수들을 이끌어 갔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위해 작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다. 올해도 지난 4월말에 라오스팀을 한국에 데려와 한국의 선진야구를 배우게 하고 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2승 2패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렇듯 철저한 준비와 훈련으로 아시안게임 첫 승리와 동시에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라)’을 유니폼 입고 선수촌에서 경기장 갈 때부터 젊은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은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가만히 나두면 알아서 잘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현민 감독이나 이준영 감독 그리고 라오스 국가대표팀을 총책임지는 제인내 대표에게 더욱 고맙기만 하다.
이들이 없었다면 절대 싱가포르팀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 싱가포르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도력 덕분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놀라운 기적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만큼 어린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칠 때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라오스 문화를 고려하면 선수들이 똘똘 뭉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선수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꼭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야구했던 모습을 라오스가 태국 전과 싱가포르 전 때 보여줬다. 이제는 선수들 스스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내게 보여 주었다. 어느 누구도 선수들에게 이렇게 하라 마라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젊은 라오스 선수들이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면서 동료들을 격려했다.
라오스는 야구를 통해 아주 조금씩 그동안 잘못 돼온 문화들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야구가 이렇게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니…야구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다.
라오스 역사에 라오스 야구가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올라간 기록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 자랑스럽다. 너희들이 마침내 위대한 일을 만들어 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