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꿈, 꿀 수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만수 감독

라오스 야구 역사에서 첫승하기 위해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겨둔 상태였다. 상대팀은 라오스보다 월등하게 기량이 뛰어나고 야구의 역사도 라오스보다 긴 싱가포르를 상대로 8-7, 극적인 스코어로 첫승을 올렸다.

솔직히 9회 초 주자를 한명이라도 1루로 내보내기만 하면 점수를 줄 것 같아 심장이 떨려 경기를 지켜보기 어려웠다. 싱가포르의 마지막 타자가 내야 땅볼로 잡히는 순간 덕아웃 안에 있던 스탭들과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함께 뒹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이 달려와 헹가래 쳐주는데 공중에 세 번 뜨면서 지난 10년의 시간이 짧은 순간에 오버랩 되면서 스쳐 지나갔다.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한지 어느덧 10년, 나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싱가포르에 첫승할 때가 추석 전날 저녁이었다. 무엇보다 추석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추석 선물로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전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제인내 대표 가족과 이만수 감독

10년 전 우연찮게 라오스 대표팀 제인내 대표에게 연락 받고 라오스 야구 보급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라오스에 처음 들어간 날짜가 2014년 11월 12일이다. 나의 친구 최동원 투수를 기념하기 위해 2014년 11월 11일에 부산에서 첫 최동원 투수상을 시상하는 날이라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부산에서 곧바로 인천으로 올라와 이른 아침 라오스로 갔다.

라오스 나라는 야구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나라였다. 12일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13일 바로 야구를 시작했다. 첫날에 ‘생소한’ 야구를 하겠다며 모인 선수가 12명이다. 이날 호기심에 야구 하겠다고 나온 젊은 청년들 절반은 맨발이었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이들과 함께 야구가 처음 시작됐다.

난생 야구라는 것을 처음 본 라오스 젊은 선수들이 작은 야구볼이 작은 축구볼인 줄 알고 맨발로 강하게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질 뻔했던 기억도 있다. 이들을 데리고 지난 10년 동안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더디게 실력을 쌓아갔다. 이렇게 열심히 키운 선수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생계를 위해 야구를 그만두는 게 답답한 문제였다.

이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잡아 둘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라오스 선수들은 매년 톱니바퀴 돌듯이 어린선수들과, 몇년 되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야구할 수밖에 없다.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 길게는 5-6년, 짧게는 1-2년밖에 되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참가했다. 이렇게 야구를 하면서 거쳐 간 선수만 벌써 200명 가까이 된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부터 유소년들 대상으로 야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5년 후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지난 시간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했더라면 지금까지 라오스에서 야구 전파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나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야구를 통해 희생과 헌신, 예절, 배려, 협동심은 이미 이들에게 깊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야구라는 것이 어떤 것이고 무엇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비록 생계 일선으로 떠났지만, 먼훗날 이들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야구가 무엇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나의 또하나 목표는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번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적은 인원만 데리고 참가했다. 정예멤버인 18명 중에서 이미 3명의 선수는 광대뼈에 금이 가고, 손톱이 반으로 갈라지고, 턱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아시안게임에 모두 출전했다.

이들 선수들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팀을 위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탭들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고 있다.

라오스 선수들이 환호하는 옆을 싱가포르 선수가 지나가고 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모든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동료들을 위해 목이 시도록 ‘수수’를 외쳤다. ‘수수’는 ‘파이팅’을 뜻하는 라오스 말이다. “두렵다”며 겁부터 먹었던 라오스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면 붙어볼 만하겠다”고 말했다. 라오스 문화에선 사실 이런 문화가 없었다. 이들과 같이 야구하면서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 단적인 예가 “경기를 할수록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라오스 야구국가대표팀은 이번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금메달보다 더 값진 첫 승을 얻은 것이다. 나는 늘 라오스 선수들에게 너희들 인생에서 “꿈꿀 수 있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이들 라오스 선수들도 내 말이 맞다는 걸 깨닫고 야구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에 진출해서도 “감독님이 말씀 하신 것을 꼭 명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2014년 처음 라오스에 들어가 “너희들의 꿈이 무엇이니?” 물었더니 “우리들은 하루 세끼 밥 먹는 게 꿈이다”라던 젊은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희망을 갖고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들을 갖는 것을 보며 야구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선수들이 목표를 정하고 이들의 인생에서 “Never ever give up”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면 언젠가는 문이 열린다는 확고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꿈을 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 야구인으로서 너무나 행복하다

이것이 나의 리더십의 핵심이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며 10년 후 라오스 야구가 한국, 일본, 대만, 중국과 대등하게 맞설 날을 생각하며 “야구를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할 때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 라오스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첫 승이 먼발치의 소소한 사연으로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의 시간들이 선수들에게 피, 땀, 눈물과 더불어 이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이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구성원을 믿고 감싸며 성장시키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해 더 멀리 보는 비전을 내놓고,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자세로 끝까지 임할 것이다.

라오스 야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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