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스포츠 선교사 ‘소명’, 감사로 완수하겠습니다”

라오스 야구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는 이만수 감독

지난 주 막을 내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모든 나라와 선수들의 최종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선수들은 목표가 달랐다. 너무나 소박했다. 다름 아닌 아시안게임 첫승이었다.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팀은 늘 변방에서, 누구의 관심도 못 받는 작은 나라의 대표였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은 무서울 정도로 대단했다.

10년 전 라오스에 들어가 이들에게 생소한 야구를 전파할 때만 해도 야구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런 나라에서 그들과 함께  야구를 하고, 복음을 전했다. 모두가 불가능하고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이런 나라에 야구를 통해 지금 예수님을 믿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른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라오스가 첫승 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9월 27일 싱가포르 팀을 상대로 8대7로 극적 승리를 했다.

싱가포르에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날 경기 기록에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 수가 11대5로 열세였다. 에러가 2대4, 전광판 기록으로만 라오스 팀이 4개지만 기록되지 않은 2개까지 합치면 무려 에러가 6개였다.

거기다가 사사구까지 합치면 싱가포르 팀에게 반 이상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대7로 승리했다. 지금도 이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이날 승리로 선수들에게 약속했던 ‘팬티 퍼포먼스’ 약속을 오는 20일(금) 아침 라오스야구협회 캄파이 회장과 스탭, 그리고 모든 선수들과 함께 달리기로 했다.

독실한 불자이며 중, 고, 대학 그리고 삼성라이온즈 시절까지 대선배였던 장효조 선배에게 용감하게 전도했다가 따귀를 두 대 맞은 적이 있다.(중략) 장효조 선배가 대뜸 “만수야, 나 교회 다녀” 하는 거였다. 나는 장효조 선배는 하나님도 전도 못 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내 아들이 목사다”라는 것이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10월 11일 창원 상남교회에서 간증을 한 이만수 감독

지난 11일 창원 ‘상남교회’와 15일 부산 제자로교회에 가서 간증을 했다. 야구 현장을 떠나서도 이렇게 대한민국 전국과, 세계로 다니며 간증과 강연을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평생을 야구인으로 살아오면서 팬들에게 큰 기쁨을 드리고 후배들에게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진야구를 전할 수 있었다. 또 개척정신과 불굴의 투지를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하기만 하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 야구로 복음을 전하는 스포츠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나는 SK 와이번스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 야구 불모지 라오스로 건너가 야구를 전파하고, 베트남과 곧 있을 캄보디아로 달려가 야구를 전할 예정이다.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인 라오스, 베트남 ,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으로 가 대한민국의 위대한 야구의 씨앗을 심고, 선교하는 비전을 실천하려 한다.

또한 재능기부로 전국을 다니며 어린이와 청소년, 발달장애 아동들을 만나, 평생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고 생생한 삶의 간증을 전하고 있다.

이날 성도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딱 3가지였다.

첫째, 하나님께 선택받게 된 일.
둘째, 아내를 만난 일.
셋째, 야구를 하게 된 동기.

내 인생에서 감사한 우선순위 첫째와 둘째가 하나님과 아내다. 현장을 나와 스포츠 선교사로 인생 2막을 살 수 있어 행복하다. 이날 타격의 천재인 장효조 선배에 대해 간증했다. 그는 독실한 불자이며 중, 고, 대학 그리고 삼성라이온즈 시절까지 대선배였다. 장효조 선배가 야구할 때 카리스마가 정말 대단했다. 그렇게 무서운 장효조 선배에게 용감하게 전도했다가 따귀를 두 대 맞았던 이야기도 전했다.

그렇게 무섭고 따귀를 두 대나 때렸던 선배로부터 1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내게 전화가 왔다. 10년만에 들어와 한국에서 처음 지도자를 했던 팀이 SK와이번스팀이었다.

장효조 선배가 대뜸 “만수야, 나 교회 다녀” 하는 거였다. 나는 장효조 선배는 하나님도 전도 못 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내 아들이 목사다”라는 것이다.

나는 선수 시절에도 선후배 그리고 나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팬과 친구, 지인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전도했다. SK 와이번스 감독에서 물러난 후에는 재능기부와 자원봉사에 힘을 쏟았고,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와 베트남에 건너가 야구로 복음을 전했다.

언론과 야구팬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내 힘이 되어준 아내는 스포츠 선교사로 인생의 후반전을 뛰는 나를 전폭적으로 응원했다.

라오스와 베트남에 야구 보급에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을 다 써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서 한번은 아내에게 “우리 이제 뭐 먹고 살아?”라고 물었다.

아내가 이런 답을 했다. “당신이 50년 넘게 야구하면서 주위 사람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커요. 숟가락 못들 정도 되면 애기할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 편히 좋아하는 야구도 전하고 그들에게 기쁘게 복음을 전하세요.”

지금까지 나는 스포츠 선교사로서 인생 2막을 사는 동안 곁에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일에 순종하도록 권면하며,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주며 기도하고 응원하는 아내가 있었다.

프로구단 감독은 화려해 보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지만, 감독이라는 이름과 경제적인 부 외에는 행복이 별로 없다. 그런 생활을 해온 내게 하나님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보여주었다. 야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높은 자리까지 올려주셨던 것임을 깨달았다.

야구계의 여러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좁은 길을 택했다. 은퇴하고 재능기부로 봉사하면서 거의 전 재산을 라오스와 베트남에 야구의 씨앗을 심기 위해 투입했다. 많은 이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았다.

하지만 명예, 인기, 경제적 안정은 없어도 나에게 참 기쁨은 야구를 통해 전하는 복음에 있었다. 모든 열정을 쏟았고, 많은 자원봉사자를 만났으며, 사업가와 기업대표들을 찾아가 고개 숙여가며 기부금을 받았다.

라오스에서 스포츠를 통해 한 국가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했다. 야구라는 단어가 없던 나라에 이젠 협회까지 생겼고, 사회주의국가인 라오스 정부가 2년 동안 외면했지만,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게 스포츠라고 강조한 끝에 결국 지원을 약속받았다.

라오스에 야구협회를 만들고, 대표팀을 결성해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2020년에는 염원하던 야구장이 멋지게 완성되어 라오스 최초로 국제대회가 열렸다. 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도차이나반도의 여러 나라에 야구와 함께 복음이 들어가도록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야구팬들에게 받은 사랑은 야구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동남아에 야구를 전파하는 것은 메마른 땅에 물을 부으면 금세 물이 증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끊임없이 씨앗을 심고 물을 뿌렸다. 라오스와 베트남의 메마른 땅에 생소했던 야구가 자리잡고 복음이 심어져 생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인생 끝까지 메마른 땅에 마중물 역할을 계속해서 반드시 결실을 맺고 싶다. 평생 야구 한길로 달려오며 남편과 아빠로서 부족함이 많다. 사랑하는 가족과 며느리, 귀여운 손자를 돌보며 건강하게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데 여전히 야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곳에 달려갈 때 사랑하는 가족 또한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나는 야구를 시작한 뒤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 그리고 야구일지이면서 나의 신앙의 행보가 기록된 믿음 일지이기도 하다. 그 일기의 한토막에 행복의 정의가 담겨 있다.

“야구 경기하다가 슬럼프가 와도 매일 일기를 씁니다. 벌써 일기를 쓴지 50년이 넘었습니다. 어린 시점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 지르고 신나게 야구를 할 것만 같은데 어느새 6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야구로 인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심히 살 수 있어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저에게 맡기신 야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스포츠 선교사로 최선을 다해 달려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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