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 사회주의 라오스에서 팬티 퍼포먼스···’약속대로’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새롭게 라오스 여자야구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제인내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감독님, 라오스 정부에서 10월 20일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선수들과 팬티만 입고 비엔티안 대통령궁과 빠뚜싸이 앞에서 선수들과 한바퀴 도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단 선수들은 팬티가 아닌 마라톤 복장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라오스야구협회 캄파이 회장이 “라오스 야구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달리겠다”고 연락해 왔다. 이번에도 캄파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 일이 성사되도록 라오스 정부에 많은 노력과 힘을 썼다.
도대체 공산국가인 라오스에서 아시안게임 첫승보다 더 어려운 일을 어떻게 허락 받았는지 제인내 여자야구국가대표 감독한테 물었다. 그는 “셈폰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캄파이 회장이 힘을 많이 썼다”고 했다.
잠시 ‘빠뚜싸이’를 소개하면, 라오스의 전쟁기념관으로 현재는 ‘승리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1949년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중에 사망한 라오스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그만큼 라오스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비엔티안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기념관이다.
이러한 곳에서 외국인이 상의를 탈의하고 달린다는 것은 라오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외국인들이라면 얼마나 조심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중국 아시안게임에서 1승을 하고 돌아온 야구국가대표팀들의 승리 퍼포먼스를 라오스 빠뚜싸이(승리의 문)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한번의 기적이다. 아울러 그만큼 정부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필자는 두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라오스 야구국가대표가 첫 승을 올리기 위해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다. 하여 수도 비엔티안의 대통령궁과 빠뚜싸이 앞에서 팬티만 입고 한바퀴 돌겠다고 선수들과 공약을 했다. 첫 승의 간절함은 나뿐 아니라 라오스 정부에서도 구기종목에서 아시안게임 첫 승과 더불어 본선에 올라가는 것을 기대했다.
아시안게인에서 싱가포르에 첫 승을 올리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과연 사회주의 나라인 라오스 정부에서 허락해줄지 의문이었다. 공산국가에서는 단체로 모임을 갖는 일은 좀처럼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공산국가들을 보면 학교 운동장이 대부분 좁거나 아니면 없는 곳이 많다.
처음 라오스에 들어가 학생들 대상으로 야구하려고 학교에 찾아갔는데 운동장이 없는 것이다. 있더라도 너무 작아서 야구할 수 있는 공간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왜 학교에 우리나라처럼 넓은 운동장이 없느냐고 질문했더니 제인내 여자야구국가대표 감독이 “라오스는 사회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주로 건물만 있고 운동장은 한국처럼 넓은 학교가 없다”고 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사회주의 라오스에서 허락해 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고, 준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라오스 야구국가대표선수들이 작은 나라, 거기다가 경제적으로도 너무나 열악한 라오스를 야구 하나로 세계에 널리 좋은 이미지로 전파해 주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도 어느덧 6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다. 이미 몸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라오스 선수들과 함께 달릴 수 있다면, 동남아 야구 붐을 위해서라면 이 한몸 불사를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동남아에 야구의 붐이 일어난다면 솔직히 이것보다 더한 일도 할 자신이 있다.
지난 20일 스탭들과 선수들, 그리고 여자야구 선수들과 함께 대통령궁이 보이는 빠뚜사 앞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소리 지르면서 한바퀴 돌았다. 참석 인원만 40명 될 정도로 많이 참석했다. SK 수석코치로 재직중이던 2007년 “인천 문학구장이 만원구장을 달성하면 팬티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날 함께 달렸던 라오스야구협회 캄파이 회장과 모든 스탭들, 남녀 야구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끝까지 영상을 담당한 유튜브 ‘피바 3콘’ 이근영 PD에게도 감사드린다. 이근영 PD는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라오스 야구발전을 위해 수년간 지원하고 있다.
정말 나는 행복하다. 희망을 갖고 꿈을 꾸다보면 이렇게 도우려고 하는 동역자들이 생긴다. 내가 라오스 야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