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⑨] 당신은 어떻게 아포리아(aporia)에서 벗어나십니까?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인재개발원 책임매니저] 길이 막혔다. 지금까지 돌아간 적은 있어도 막힌 적은 없었는데 좌우를 둘러봐도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벽은 쉽사리 넘기 힘들어 보인다. 이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인 공간보다는 사유의 공간에서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아포리아(aporia)라고 명명했다.
아포리아의 의미는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다. 이를 조금 더 설명해보면 “사물에 관하여 해결방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나 상태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아포리아는 일상에서도 발견된다. 대화나 토론의 과정 속에서 말문이 막히는 경우도 그렇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모순에 직면한 경우도 그렇다. 아포리아에 빠지는 경우는 스스로 빠지기도 하지만 타인이나 상황에 의해 빠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경우가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번 빠지게 되면 쉽사리 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포리아에 빠졌다면 여기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도는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포리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수월하다. 먼저 제시해볼 수 있는 것은 막힌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말고 잠시나마 그대로 머물러 있어 보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잘 모르는 상태나 모순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은 아포리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더라도 상황이나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는 있다.
다음으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보는 것이다. 바둑으로 보면 일종의 복기(復棋)를 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어디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고 무엇부터 다시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면 자신이 해왔던 것에 대해 혹은 걸어왔던 것에 대해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하거나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등의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에 대한 비난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에서 막혔을까?” 등과 같은 직접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여러 파생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다보면 처한 상황을 극복하거나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람이 아포리아 속에 빠지면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질문에 답을 해나가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과정이 곧 문제해결 과정이기도 하다.
아포리아에 빠졌다는 것을 실패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고 있는 분야나 일에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아포리아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포리아를 만나게 되면 낙담 대신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아포리아에서 빠져나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