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⑧] 이 공간에서 당신이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저 공간을 어떻게 비우고 어떻게 채우시겠습니까? <사진 김희봉>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책임매니저, 교육공학박사] 모든 칸이 채워져 있다면 채워진 것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 여백의 미(美)란 이런 것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한다. 일반적으로는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거나 특정한 지위 등에 오르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가진 것이나 누리는 것이 많은 경우 더 어렵다.

비우기 어려운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먼저 살아오면서 무엇인가 계속 채워나가는 것 그리고 채워야 한다는 것에는 익숙해져있지만 비우는 연습이나 경험을 해 본 적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잘 모른다. 학생 시절에는 점수를 채워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통장 잔고를 채워야 했다. 집 안에는 각종 가구와 가전기기 등을 채워왔다. 반면 무엇 하나 덜어낸 적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음으로는 무엇인가 비워진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비워진다는 것을 부족하다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비움과 부족은 엄연히 다르다. 비움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가능하지만 부족은 그렇지 않다. 비움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지만 부족은 그렇지 않다.

아울러 비움으로 인해 얻는 것도 있을 터인데 그런 생각은 나지 않는 것도 비우기가 어려운 이유가 된다. 무엇인가를 비운다는 것은 달리 보면 무엇인가를 채울 준비를 하는 것이고 채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비워야 한다. 비우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다.

그렇다면 비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순서상으로는 이미 자신에게 채워져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부터 해보면 좋을 것이다. 자신의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을 살펴보는 것은 쉬운 예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채워진 것에 대한 평가를 해보는 것이다. 마땅히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진 것인지를 확인하고 불필요한 것이 채워지지는 않았는가를 검토해봐야 한다. 앞서 제시한 일정을 예로 들면 꼭 해야 하는 일이나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는지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별다른 기준 없이 해왔던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지워도 된다. 지우지 못한 일이나 사람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비움과 채움의 기준을 세워보는 것은 필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우는 일을 마치고 나면 한동안 비움의 상태를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비움과 동시에 무엇인가를 채우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워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비워진 상태에서는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또한 비워진 상태에서는 다양한 시도도 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비워진 상태는 가능성이 많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회는 비워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이제 곧 연말이다. 올 한 해 나는 무엇을 채워왔고 무엇을 비워왔는지 살펴볼 때가 되었다. 혹 욕심과 같이 채우지 말았어야 할 것을 채워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비우지 말았어야 할 것을 비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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