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⑭] 당신의 ‘기다림 한계시간’은 얼마?

이 카메라 기억나십니까? 당신은 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사진이 현상돼 나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 본 시간이 있으신지요? <사진 김희봉>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인재개발원]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대부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 본체의 후면을 열어 별도의 필름을 끼워 넣고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고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져서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 찍으면 삭제하고 다시 찍으면 된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도 없을 뿐더러 촬영을 마친 후에는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 사진으로 인화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와 같은 기다림은 자신이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에 대한 궁금증, 기대와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나 등과 같은 걱정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후 마주하는 사진은 만족도와는 관계없이 쉽게 버리기 어렵다. 한참을 본 후에나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기다림이 사라졌다. 어떤 일이 되었건 신속한 반응과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어 기다림이라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비효율적이나 비생산적 등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다. 주문을 하면 당일에 물건을 받을 수 있고 혹 당일이 어렵다면 적어도 다음날이면 해결된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검색하면 거의 바로 검색내용이 화면에 표시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다림의 시간이 발생하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약간의 불편함이라도 참을 수 없다면 기기를 바꾸고 주문처를 바꾸고 소프트웨어를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사람 사이의 관계나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한마디로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것이 실시간으로 해결되는 요즘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리 낯설지만도 않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기다림이라는 소중한 시간도 필요하다. 일례로 제안이나 의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으로부터 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스스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제안을 하고 의견을 물은 것인지 올바른 질문을 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다림의 시간은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넘어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은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 대해서도 숙고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기다림이 사라진 곳에는 신속함과 효율성이 남는다. 그런데 신중함과 효과성까지 남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있어야 남는다.

사람과의 관계나 일에 있어 얼마나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봤는지 생각해보자. 상대방의 늦은 반응이나 더딘 의사결정에 불편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보자. 혹 기다림의 시간을 참지 못해 상대방을 다그친 적은 없었는지도 생각해보자.

기다림은 관계에 있어 여유이고 일에 있어 여백이다. 여유와 여백이 있으면 관계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는 깊어진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에 초조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시간을 마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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