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교육 다시보기] 이 교육 꼭 해야 합니까?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교육공학박사] 지금 조직에서 교육하고 있거나 앞으로 하고자 계획된 콘텐츠는 과연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그 콘텐츠는 구성원들의 선택여부를 떠나 반드시 받거나 제공돼야 하는 것인가? 만일 어떤 구성원이 그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속한 조직 그리고 해당 비즈니스 환경에서 지금은 물론,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울까?
기업교육에 종사하고 있다면 교육을 기획하거나 콘텐츠를 개발 또는 선택할 때 이와 같은 성격의 질문을 반드시 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조직별로 규모의 정도는 다르지만 이를 수행하는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을 위해 많은 인력과 예산 등을 할당하고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시대나 사회 그리고 조직을 막론하고 구성원에 대한 교육이 간과된 적은 없었다. 그만큼 구성원 육성 및 역량 개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지원에 비해 효과는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다. 교육 후 구성원의 변화 혹은 성장에 대해 직접적인 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고 단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 그렇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HRD에서의 투자 대비 효과, 즉 ROI(Return On Investment)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HRD가 중요하다는 말의 빈도나 인식하고 있는 수준에 비해 H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나 이를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자연스럽게 조직에서의 HRD는 필수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대안이나 선택적인 활동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라면 이와 같은 활동이 없더라도 당장에는 비즈니스에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HRD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인식이나 현상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알고 있고 경험했던 바와 같이 교육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며 돈을 주고 바로 물건을 사는 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교육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이나 현상이 왜 발생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유를 떠올려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구성원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콘텐츠는 물론, 알면 좋은 혹은 좋을 것 같은 콘텐츠로도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공되는 교육의 학습목표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학습목표가 방대하거나 모호한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육에 있어 선택과 집중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다루어야 할 콘텐츠는 일반화되어지고 이를 위한 교수학습 방법 역시 평이하게 제공된다. 이와 같은 콘텐츠가 과연 비즈니스 환경 속에 놓여진 구성원의 성과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할까?
더군다나 HRD측면의 ROI를 계산해보려고 하고 비즈니스 성과와의 연계를 찾는 입장에서 보면 알면 좋은 콘텐츠는 굳이 조직의 HRD에서 다루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알면 좋은 콘텐츠는 조직이 아닌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본인의 필요와 관심에 의해 학습자 스스로 선택한 교육이 보다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콘텐츠는 이미 조직 밖의 다양한 채널에서 제공하고 있다. 조직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는 조직의 목표나 최종산출물과 관련, 구성원들이 알아야 하고 적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비단 직무교육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HRD를 하면서 안전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접근을 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아직도 각 조직에 존재하고 있는 직급별 교육체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체계는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역량을 기반으로 구성된 체계는 지면상으로 구성원 육성 및 성장의 프로세스를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일반적으로 삼각형이나 계단형 등과 같이 도식화되어 보여지는 모습은 한마디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조직에 들어온 초기의 구성원이 해당 조직에서 꽤 오랜 시간을 근무한다는 가정이나 전제가 통했을 때의 이야기다. 요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수시로 구성원들이 채용되고 이직한다. 그리고 역량모델링 등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도출한 역량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나 비즈니스의 변화 속도를 감안하면 역량모델링이 마무리된 시점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기업교육은 어떻게 접근돼야 할까? 우선 HRD가 애자일(agile)화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HRD가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HRD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어질리티(agility)가 높아져야 한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비즈니스와 연계시켜보는 사고력이 요구된다.
머릿속 상상만으로는 어림없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방대한 양의 책을 읽고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등을 할 수 있고 소위 말하는 인사이트(insight)도 기대해 볼 수 있다. HRD에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나 비즈니스와의 연계를 기대한다면 이는 필수적이다.
다음으로는 현존하는 콘텐츠에 대해 과감한 손절매(stop-loss)를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마디로 해당 교육을 계속 할 것인지 그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손절매는 주식시장에서 해당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때 손해를 보더라도 파는 것으로 큰 손실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다. 기존의 교육프로그램이나 콘텐츠 등은 HRD에서 손절매 대상 후보군에 해당된다. 손절매의 기준은 해당 교육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대한 평가를 통해 마련되어져야 한다. 흔히 실시되는 학습자 반응평가로는 할 수 없다. 학습목표나 비즈니스와의 연계정도 그리고 현장에서의 적용도 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평가항목이나 방법 등도 달리 접근되어질 것이다.
기업교육을 다시 보기 전에 가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가정에서 지출되는 항목과 비용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자녀 교육비도 있다. 만일 가정에서 여러 상황이나 사정으로 인해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경우에 처했다면 먼저 문화나 여가활동에 사용되었던 비용을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면 외식비와 같은 비용이 절감 대상이 된다. 마지막까지 쉽사리 줄이지 못하는 비용은 자녀 교육과 관련된 비용이다. 그것도 취미와 관련된 교육이나 유행을 쫒아가는 교육이 아니라 자녀의 독립과 자립 그리고 생존에 관련된 교육비용이다.
왜 그럴까? 그 교육이 바로 자녀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준비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렵다고 자녀 교육을 멈춘다면 지금 당장은 잠시 숨통이 트일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호전되었을 때 치고 나갈 힘이 부족할 수 있다. 이는 가정이나 어린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나 그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성과창출과 지속성장에 기여하는 기업교육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계속되어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곧 2020년을 맞이하게 된다. 기업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020년에도 변함없이 강조될 것이다. 그런데 강조만으로는 부족하다.
강조되는 것을 넘어 이제 각 조직의 HRD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교육 꼭 해야 합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교육을 기획하고 설계하고 개발하기 위한 연구와 실행이 순환되어야 한다. HRD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구성원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교육 꼭 해야 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