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추억속으로] 시간표 없는 ‘신작로’서 ‘심작로’ 찾다, 그리고 ‘길을 만나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전 인터폴 부총재] 외가에 간다고 큰 누나와 신작로로 나간다. 올 때 됐는데 기척 없다. 이제 올까 저제 올까 집으로 돌아간다. 몇번 왔다갔다 하다가 “올 거 같은디” 하며 뛰어나간다. “온다 온다, 빨리 와 누나.” 내 친구 신났다.
신작로는 결코 분주하지 않았다. 5일장, 장날이나 돼야 집 나선다. 아침 나절 버스 한 대 오면 양손에 주렁주렁, 머리에도 인 채 타고 나간다.
장터. 아는 이가 보인다. “잘 지내셨대유?” 안부 묻고 팔고 산다. 국밥으로 오래 만에 호사하고, 읍사무소 들리고,친척집에도 얼굴 내밀고, 그 버스 돌아갈 시간 맞춰 탄다.
드문드문 다니는 버스가 안 오면 장에 못 간다. “내 거야 그만 두더라도 쥔 양반 고무신하고 애들 입성 좀 사야 하는 디, 낭팰세” 할 때 밋숑 고장 났다던 버스가 저기서 부릉부릉 그럼 그렇지 오긴 온다.
동네 벗어나면 신작로
그런 재밌는 버스를 나는 타보지 못했다. 화양 집에서 아버지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한 30분 모시 유명한 한산 사거리 바로 거기가 나들이 요충지 즉 분기점이었다.
우측으로 가면 선산, 마산 소야리 좌측으로 가면 서천읍 큰 고모네다. 두어 시간 거리, 다 걸어서 다녔다.
장항 초등학교 가는 길. 한산 사거리 못 미쳐 송림리 가서 장항선 철도 건널목 건너 오른쪽에 마서국민학교 보면서 가면 서천읍과 장항읍 간 신작로 바로 오른 쪽에 학교가 있다. 운동회 날마다 비오는 학교, 바로 그 학교다.
정반대 장항으로 들어서면 성주동 고아원 친구들 만나 장난치며 아주 먼 옛날 선배들이 구렁이 잡아 죽여 행사 때마다 비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들어간다. 반로(畔路) 논두렁길. 반로와 밭머리길 뿐이다.
버스 한번 탄 기억이 있다. 한산에서 부여 홍산면까지 정류장 40여곳 지나 두 시간 넘게 덜덜덜 달리다 서고 섰다가 달렸다. 집안 잔치에 가는 길이라 아버지는 하이칼라 머리에 포마드 바르셨다. 향기 너무 좋았다.
서커스도 돌고 인생도 휘돌던 신작로
큰 길이면 다 신작로였던가. 우리들 장항학교 같은 학년 향금이가 가출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새로 만든 길(新作路)로 그녀는 갔다. ‘그 길은 자동차 다니라고 한 건데 외지로 나가는 길이구나’ 생각들었다.
길은 양방향. 외지에서 들어오는 길이기도 하다. 어느 날 서커스가 들어왔다. 논산다리 밑에서 했다는데 노성 사는 내 동무는 돈 없어 천막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원숭이만이라도 보려고 옆집 형과 걸어서 10km를 왕복했다.
장항에선 원제 덕 많이 봤다. 일본말로 ‘기도’(木戶)가 흥행장 출입구를 지켰다. 극장 기도, 서커스 기도라고들 했다. 표도 받고 개구멍 출입자도 잡고 주먹들이 했다. 원제가 그 꼬붕(子分) 즉 부하였다. 우리는 무사통과.
서커스 오면 지에므씨(GMC) 트럭에 여배우들 태우고 피에로 앞장서고 뒤따르는 나팔수가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이~있다” 불렀다. 구슬펐다.
러시아 귀족이었다는 아버지와 딸, 둘이 바이올린을 청승맞게 켰다. 그들은 러시아에 혁명이 나서 신작로 타고 왔다고 했다.
신작로, 왜 열살 소년들을 그리 설레게 했나?
군청 소재지 서천읍 읍내엔 신작로가 군청에서 나오는 삼거리 하나였다. 장항읍이 많았다. 길이도 더 길었다.
서천에서 들어오는 길목에서 읍사무소 네거리로 해서 제련소까지. 또 하나는 장항역에서 도선장, 군산가는 통통배 철선(鐵船) 다니는 부두까지 널찍했다.
장항의 번화가 명동엔 H자형 신작로 가운데 길 읍사무소 쪽에 신발가게가 있었다. 귀한 운동화들이 쌓여 있고 큰 외숙모가 점방 주인이었다. 학교 갔다 집에 가는 길엔 우리 동무들이 함께 들러 특이한 고무냄새를 맡곤 했다.
서커스 들어오면 큰 외삼촌은 바람이 든다. 멀쩡한 직장 다니면서 “나도 말야, 저렇게 멋지게 부른다. 콩쿠르에 출전해서 말야 우승하면 되는데 말이야” 하고 큰 소리 친다. 큰 외숙모는 “속 그만 태우세요” 애원한다. 외삼촌은 결국 꿈을 접었다.
원제도 그때쯤이면 역시 들뜬다. 검은 색안경 쓴 군인들한테 심부름 다닌다. 초대권 배달이다. 물론 새 영화가 들어와도 그 일은 키 크고 체격 좋은 ‘미소년’ 우리들의 호프 원제 몫이다.
원제가 말했다. “너 그거 알지. 미군 비행장에 가면 씨아이씨 있는데 최고다. 저기 교회 뒤 2층 집 그게 특무대야. 미군 방첩대래.”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 미군 방첩대)를 두고 한 말이다.
원제는 신이 났다. “검은 라이방 쓰고 지프 타고 사람들이 다 거기 가서 인사드린다. 나도 군대 가면 저기 들어간다.”
철길로 갔다 신작로로 돌아오나
국민학교 3학년 시골 녀석이 논산 다음 부황역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탔다. 경험은 언제나 그렇듯 기차를 보는 순간부터 흥분했다고 한다.
보통은 걷고 아주 뜸하게 버스를 탄다. 자주 통통배를 타고 가끔 돛단배를 탄다. 원제가 탄 거 역시 논산훈련소 가는 기차였다. 연무대행 철길이다. 우리 친구들 영모, 동길이도 모두 철길로 그렇게 연무대로 갔다.
객지 나와 살면서 여러 길 많이도 다녔다. 며칠 전에는. 백내장 수술 한 내자를 모시고 왔다. 현대판 신작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시원하게 뚫린 이 신작로처럼 시원하게 보이는 눈으로 재생하길 빌었다. 집에 왔더니 장기양씨가 보내 준 2017 달력이 있다. 달력 첫장에 타이틀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길을 만나다’
기분 좋다. 내년엔 어디서 오는 지, 왜 오는 지 모를 이 답답한 기분 좀 가시려나? 이번엔 심작로(心作路), 마음 가는 길, 확 트인 신작로(新作路) 만들게 되려나. 어느 새 신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