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파 신문지 줍다 혼나고···”단결하라 빈민이여. 혁명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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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서울경찰청 정보국장] “아니 그걸 몽땅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누가 그러나 했더니 할머니였구먼요.”

갓 서른 넘었음직한 청년이 삿대질하며 소리친다.

그 앞에 겁에 질려 오그라든 할머니 옆에는 골판지며 신문이며 빈 병이 듬성듬성 든 조그만 카트가 있다. 가끔 그 위에 앉아 쉬는 걸 보곤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길거리에 내놓은 생활정보신문을 배포하는 직원인데 한 보름 전부터 그 동네 정보지 누가 다 가져갔다. 오늘 범인 할머니 잡았다. “이거 보이죠?” 1면을 가리킨다.

할머니는 “눈 나빠서 안 보인다” 한다. 거기에는 “생활정보신문 무단 수거 및 매매는 절도죄에 해당돼 6년 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형사처벌 받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총각, 형사처벌이 뭐여?”

치와와 탕 해먹으려다 불 내고

비원 앞 오른 편 동네 익선동은 1960~70년대에는 일본인 상대 기생관광요정이 번성했다. 지금은 한정식 집 한 둘 명맥 잇고 있다. 당시 여성들 드나들던 미장원과 한복집 아직도 몇 있다. 예전 그대로다.

길 건너 돈의동의 종묘 돌담 끼고 이어진 쪽방에 기생과 그 기둥서방 살았다. 팁이라는 봉사료가 벌이였다. 그래도 엄마 병원비는 물론 동생들 학비 댔다.

일대에는 점집 아직도 많다. 희망을 점에서 엿보았다. 그 사람들 어디로 흩어졌나. 인생역전이나 일확천금 이루었는지. 아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삶 살았을 듯하다. 형편이 펴는 날 찾아 왔을까?

주민은 바뀌고 바뀌었다. 요즘은 날품 파는 떠돌이들 모여든다. 일당 벌면 하루 묵고 벌이 없으면 지하도에서 잔다. 그 한 평 방에서 불이 났다.

주인집 작은 개 치와와를 훔쳤다. 죽였다. 털 태우려다 불을 내 들통 났다. “배 너무 고파서 탕 해 먹으려 했다” 한다.

하루 얼마 걷고 얼마 벌까

70, 80살 되면 빈부 차 눈에 확 띈다. 있으면 배부르고 없으면 하루 한 끼도 힘 부친다. 팔순 넘으면 방 아니면 산에 눕는 이 많아진다. 그래도 있으면 죽을 때 호강한다.

폐휴지와 빈병 줍기도 다 구역이 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야지 암말 없다. 서로 다투기도 한다. 세 바퀴 오토바이에 밀리기도 한다. 보통 하루 사오십리 걷고 칠팔천원 손에 쥔다던데.

폐휴지 주워 입에 풀칠해도 한겨울 단칸냉방에서 지내도 가족 셋 다 아파도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는 이런저런 조건 붙여 제외시킨다. 도움 안 된다. 데모도 동원자금 있어야 한다. 국회는 사람 죽어야 법 손질한다.

돈 있으면 경쟁에 유리하고 더욱 더 부유해진다. 돈 없으면 경쟁에서 밀리고 더욱 더 궁핍해진다. 이럴 때 정부는 있는 자와 유착한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이해된다. “단결하라 빈민이여. 혁명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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