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70대 중학동창생의 알콩달콩 우정이야기

front_23482

소갈딱지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전 경찰청 수사국장] 세상에는 좋은 것도 많지만 못 마땅한 것도 많다. 내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나 자신이다.

우선 생김새다. 키가 늘씬하고 얼굴이 훤하면 좋으련만 키는 작달만한 하고 얼굴은 삐죽하니 볼품이 없다. 아무리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은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아니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니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생김새는 내 몸의 겉모습이다.

70년 넘게 큰 탈 없이 지내온 몸이니 잘 생기고 못 생기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정말 못마땅한 것은 소갈딱지다.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 같다고 하는데 바로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K

나는 속이 좁다. 안목이 짧고 이기적이다. 주변을 감싸기 보다는 시시콜콜 잘 잘못을 따진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못하고 남탓을 한다.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 형편이면 앙앙불락이다. 그리고는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이러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하는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이중 한 명이 K다.

이 친구는 나와 다르게 속이 매우 넓다. 이해심이 깊다.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쓴다. 도움을 줄 수 없으면 안타까워한다.

K는 공무원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퇴직을 하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 직종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가까이 하지도 말고 멀리 하지도 말라고 했다. 언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 조심을 하라는 경계의 소리다.

이러니 퇴직하면 주위에 사람들이 떠난다. 일반인만 멀 리 하는 것이 아니다. 현직 역시 전직 선배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업무 특성상 퇴임한 선배로부터 곤란한 부탁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퇴직자는 일반인과 후배 모두에게 모두 기피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K는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다. 퇴직을 한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후배들이 찾아온다.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안부를 전하고, 자식의 결혼 주례를 부탁한다.

추석 등 때가 되면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선물이라고 해도 고가의 물건이 아니다.

좀 특별하다

바닷가 가까이 근무하는 직원은 생선, 미역 등 해산물을, 농촌에 근무하는 직원은 사과, 배, 밤, 인삼 등 농산물을 보내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퇴직한지 15년이 넘은 선배를 이렇게 챙기지 않을 것이다. K가 재직시절에 어떻게 주위 사람들을 대하였는지 그리고 성품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K의 덕행 혜택을 내가 본다. K의 식구는 노부부와 딸 이렇게 세 명이다. 얼마나 먹겠는가? 젊은이 한사람보다도 못하다. 들어온 선물을 다 소비하지 못한다. 남는 물건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도 지인 중 한사람이다. 종종 선물을 받는다.

지난 가을이었다. 아내와 가평 장에 가는데 K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택배하나 보낸다. 오늘 도착할 거다.” 전에 보낸 선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보낸 것이다.

정성을 포장한다

지난 번 선물도 부담이 되었는데 또 받게 되니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 받기만 하니 염치가 없다. 나도 무엇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퍼뜩 잣이 떠올랐다. 잣은 이곳 가평의 특산물이다. 얼른 인근 잣 판매점에서 잣을 두 봉지 사서 발송을 하였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에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선물 상자를 보고 아차 잘못했음을 직감하였다.

선물 상자는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포장지를 끌러 보니 상자 안에는 과자와 녹차가 생산지에 대한 친구 필적의 설명서와 함께 들어 있었다.

상자 표면에는 시 두편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K가 포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K의 정성도 보였다. K는 선물을 보낼 때마다 매번 이렇게 정성을 함께 싸서 보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성의 없이 잣을 보냈다. 부담감을 덜겠다는 내 입장에 급급하여 판매점에 택배 발송을 의뢰하였다.

화딱지

내가 한 것은 돈을 지불한 것뿐이었다. 정성을 들여 예쁘게 포장을 하여 보내는 K와 손쉽게 판매점에 의뢰한 나의 태도가 너무 대조가 되었다. K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음 날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잣 사서 보낸 것이지?”

“응”

“그러지 마. 나는 먹을 거 같이 나눠 먹을려고 보내는 거여. 굳이 사서 보내고 그러지 마.”

사서 보내지 말라고 두 번 씩 강조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미안한데 사람을 더욱 미안하게 하고 있다. 미안함과는 별개로 내 자신의 모자람에 화가 났다.

“야, 너 나 창피 줄려고 작정을 했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적반하장격인 내 자신의 모자람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는 꼴이라 “알았어.”하고 전화를 끊었다.

60년

K는 나를 부끄럽게 하고 모자람이 들어나게 했다. K와 함께 하면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도 나름 노력하며 산다고 하였는데 이 친구한테는 한 참 뒤 떨어진다. 공연히 심통이 났다. 약도 올랐다. 밴댕이 소갈딱지가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본래 좁은 속을 어찌 하겠는가? “허허” 웃어 넘겼다.

K가 내 이 모습을 보면 무어라 할까? K의 표정이 궁금하다. 70이 넘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K와 나는 사귄 지 60년이 다 된 까까머리 적 중학교 친구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