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스캔들’ 미국 대통령은 워런 하딩, “한국은요?”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앤드류 잭슨 미 제7대 대통령(1829~1837년 재임)은 대통령 되기 전인 1791년 라첼 도넬슨과 결혼했다. 유부녀였다. 남편이 간통으로 고소해 3년간 송사가 계속됐다. 대선 쟁점으로 잭슨을 괴롭혔다.
율리시스 그랜트 18대 대통령은 1869~1877년 재임했다. 친구들을 요직에 임명했다. 대통령은 심복들과 짜고 부정을 자행하고 뇌물을 받았다.
자주 만나던 투기꾼들이 장관들과 백악관 비서관들을 매수해 금을 매점해 떼돈을 벌려고 했다. 금값 폭등할까 겁 난 대통령은 재무성의 금을 풀었다.
시중에 금이 넘쳐나 1869년 9월 24일 마침내 폭락했다. “Black Friday”를 초래했다. 수많은 사람이 빈털터리가 됐다.
연방정부자금을 대통령 지인인 유니언퍼시픽철도회사 사장이 편취했다. 자회사인 Credit Mobilier에 빼돌리려는 움직임을 법무장관이 알고 수사에 착수하자 해임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 부통령과 대통령 추종 국회의원 등 정권 실세들은 유니언퍼시픽으로부터 주식을 시세보다 헐값으로 제공받고 눈감아줬다.
국방장관은 업자로부터 7년 동안 매년 리베이트식으로 뇌물을 수수했다. 재무성은 위스키 업자들이 술 생산량을 축소신고해 세금포탈 해도 눈감아주는 대신 뇌물을 챙겼다. 이른바 ‘Whiskey Ring’(위스키 패거리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퇴임 후 금융회사의 파트너가 됐다. 공직 퇴직자 연금 말아먹는, 오랜 전통의 뻔한 사기수법에 넘어가 파산했다. 회고록을 집필해 인세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제22대(1885~1899년)와 24대(1893~1897년) 두 번 재임했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내내 중상모략과 비방이 횡행했다.
반대파는 클리블랜드에게 사생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운동 노래를 만들어 유포했다. 제목도 “Ma. Ma. Where’s My Pa?”(엄마 엄마 아빠 어디 있어요?) 하고 연일 불러댔다.
당사자는 긍정도 부정도 안했다. 할핀이란 여인은 여러 남자와 관계했지만 미혼 남성은 클리블랜드 자신이라며 양육비를 지급했다.
1884년 대통령 선거에서 클리블랜드가 당선. 민주당 계열 신문은 기사 타이틀을 이렇게 달았다. “엄마 엄마. 아빠 어디 있어요? 백악관 갔단다. 하하하!” 대유행했다.
일컬어 실세라는 자들
워런 하딩(29대, 1921~1923년 재임) 시절 대통령 선거의 승리 공신들과 오하이오주의 친구들, 오하이오 갱들이 워싱턴 고위직을 점령해 이권을 좌지우지했다.
백악관 도서실에서 친구들과 한 주일에 두번 불법 제조된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 연기 뿜어대면서 포커 판을 벌였다.
포커 게임 친구인 찰스 포브스를 재향군인회장에 앉혔다. 포브스는 보훈병원 건립예산 수백만 달러를 횡령했다.
선거운동 기획자인 해리 도허티는 법무장관 자리를 꿰찼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압류한 미국 내 독일재산을 반환하는 과정에서도 뇌물을 챙겼다.
상원의원 출신인 앨버트 폴은 내무장관이 됐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Teapot Dome scandal’의 주인공이다.
죽어서도 공개되는 연애편지
빌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 타이틀을 하딩 대통령에게 양보해야 할 듯하다. 친구 부인인 필립스와 불륜. 대통령 되기 전 15년간 계속됐다. 하딩이 러브레터를 많이 보냈다.
1912년 1월 28일자 러브레터다. “내가 오늘 밤 당신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과 키스하고 애무할 수 있다면. 당신이 ‘오오 워런!’ 하며 기쁨에 겨워할 때까지 꼭 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오.”
하딩이 대선후보가 되자 필립스는 “편지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2만5천달러를 요구했다. 하딩은 그 돈을 주고 받아왔다. 약 1000페이지 분량으로 의회에 보관했다. 비밀유지기간 100년이 풀려 세간에 알려졌다.
사생아도 있었다. 100년의 소문 끝에 하딩 후손들이 사생아 후손이란 사실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인정됐다.
돈 문제건 이성 문제건 권력자 비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성사 불가다. 이 세계야말로 친분이라는 돈독한 끈이 있어야 자행된다. 반딧불,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