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출신 소련간첩 킴 필비의 속 뒤집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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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1990년 발행된 킴 필비 우표?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캠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 소련간첩 5인방 명단이다.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맥린, 앤서니 블런트, 존 케인크로스 그리고 킴 필비.”

필비는 소련간첩으로 미국에 망명한 KGB 요원이었다. 1962년이 저물어갈 무렵 CIA는 이 내용. 영국 간첩수사하는 국내방첩국 MI5에 통보했다. 영국 당국은 MI6에서 필비와 함께 근무한 오랜 동료 Nicholas Elliott를 보냈다. “잘 설득하라. 그대 임무는 매우 중대하다. 꼭 성공하라.”

오산이었다. 친구 필비를 친구 엘리오트가 조사한다니. 필비가 몇 수 위인데 어디 제대로 되겠나.

“빨리 도망쳐라 필비야. 필비 나를 보낸 이유 알겠지? 실망시키지 마. MI6 동료들 체면 세워주라. 자백하고 면책 받아라.”

필비는 소련 스파이 일은 실제로 1949년까지만 했다. 그 이후는 하지 않았다. 두쪽 짜리 자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에 필요한 소련측 관련자 이름은 일체 밝히지 않았다.

조사관 엘리어트는 사흘 만에 두 손 들었다. “본부에 일단 가서 상의해야겠다. 그동안 심사숙고해.” 1963년 1월 16일 귀국했다.

필비로서도 무슨 수가 있을리 없다. 궁리 끝에 결론 내렸다. 뾰족한 수 없다. KGB 측에 일단 알리자.

연락책과 접선해 “자백하는 시늉만 했다”며 대처방법을 논의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적진탈출! 도망치라”고 했다. 모스크바는 “결정은 필비 당신 몫이요” 했다.

1963년 1월 23일 부인과 디너파티 함께 가기로 한 날이다. “송고해야 할 기사 거리가 갑작스럽게 생겼어. 많이 늦는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 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 속에서 베이루트 부두로 향하는 발걸음이 쟀다.

소련 화물선 Dolmatova는 필비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비는 승선 깊숙한 선실에 숨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가. 내 이념의 조국 소련 위해 일한 결과가 이것 뿐이란 말인가?’

파티 끝나고 귀가한 필비 부인이 난데없는 2천달러를 침대 위에서 발견했다. 메모도 없었다.

그 시간 화물선 달마토바는 닷새 걸리는 항해를 시작했다. 1963년 1월 27일 오데사에서 하선해 모스크바로 갔다.

술에 빠져 살고 자살 기도

1963년. 3월 29일 필비 잠적 후 2년 지난 이날 영국 수상이 필비 행방불명 사실을 발표했다.

1963년 7월 3일 소련은 정치 망명한 필비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하고 러시아 여권을 발급했다. 그리고 KGB 소장으로 임명했다. 평생 연금을 수여한다고도 발표했다.

1964년 BBC 특파원이 필비를 6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영국 정부에서 방영 불허했다.

필비는 모스크바 생활이 안정되자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7년 걸렸다. 1968년 탈고했지만 소련에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해 1980년에야 출판했다.

뉴욕에서 먼저 나왔다. 제목은 <My Silent War>. 1968년 2월이었다. 9월에는 런던과 파리에서도 출간.

자서전 쓰고 나자 할 일 없었다. 무료한 생활. ‘이런 게 공산주의 천국인가’ 실의에 빠졌다.

1969년에서 1970년에 이르는 2년. 소련 도망 후 8년에서 9년째 되는 기간이다. 매일 과음했다. 자살 기도도 했다.

망명자 쇼 케이스

1970년 21세 연하 루피나를 소개받고. 생활리듬을 복원했다. 1971년 12월 19일 결혼했다. 네번째였다.

출퇴근하는 일거리가 없었다. 먹고 놀라는 식이다. 1년에 한두 번 국내외 여행을 보내줬다. 특히 좋아하는 불가리아를 비롯해 헝가리, 라트비아, 쿠바 등을 다녀왔다.

“소련 위해 일한 간첩 다 대우해준다. 필비 보면 알 거 아니냐. 위험해지면 모스크바에서 살게 해준다. 걱정 말고 비밀 훔쳐라.” 그렇게 오직 선전물로 활용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전시동물 처지다. “일이라니 무슨 일 하려고 하쇼. 편히 지내시죠.” 무위도식, 고독하고 소외된 채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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