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스파이 3화] ‘007시리즈’보다 극적인, ‘제임스 본드’만큼 숨막히는

제1화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경찰청 전 수사국장]?1944년 8월 이스탄불 주재 영국 부영사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면담을 하고 싶으니 날짜를 잡아 달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겠다.”

이런 편지는 늘 있어왔다. 무시했다. 9월 4일 편지 주인공이 부인과 함께 부영사를 찾아왔다. 터키 주재 소련대사관 콘스탄틴 볼코프(Konstantin Volkov)라 했다. 내무인민위원부(NKVD) 소속 스파이였다.

볼코프는 “영국정부 핵심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망이 있다. 그에 관한 자료 갖고 있다”고 했다.?그는 외무성에 2명, MI6에 1명이며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볼코프는 정보제공 대가로 망명을 요청했다.

부영사는 외무성에 보고하고 외무성은 MI6에 이 사실을 전했다. MI6 내 담당은 킴 필비(Kim Philby)였다. 소련의 잠입 스파이로 1930년대부터 활동했다.

MI6 소련 문지기가 망명 막아

볼코프가 말하는 MI6의 한 명이 다름 아닌 킴 필비였다. 볼코프가 망명하면 그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필비는 국장에게 이스탄불에 직접 가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가기는 가되 직행은 하지 않았다.

먼저 소련 측에 알려줬다. “볼코프가 망명하려 한다. 빨리 막아라.” 필비는 느긋하게 중동을 거쳐 갔다. 소련이 수습할 시간을 줬다.

돌고 돌아 21일이나 지나서 도착했다. 소련은 그동안 볼코프 부부 행방을 수색해 체포했다. 마취시켜 들것에 꽁 꽁 묶어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실었다. 귀국 후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아시아엔> 독자들이 짐작하는 대로다.

필비는 유감스럽게도 망명 징후가 없었다. “귀국하겠다”고 전보로 보고하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2화

블라디미르 페트로프(Vladimir Petrov)와 에브도키아(Evdokia)는 부부는 NKVD 소속 스파이로 1950년 2월 오스트레일리아에 부임했다. 1954년 3월 3일. 대사가 페트로프 사무실을 불시 점검했다. 서류는 온전했다. ‘왜 내 사무실을 조사하나. 날 의심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페트로프는 NKVD 총수 라브렌티 베리야 파벌에 속해 덕을 많이 봤다. 그러다 바로 1년 전 베리야가 총살당한 후 페트로프는 그 여파가 자신에게도 밀려와 숙청될까 두려움에 떨었다.

그 무렵 오스트레일리아 정보부(Australian Security Intelligence Organization)의 에이전트인 폴란드 출신 내과의사가 접근해 오스트레일리아 귀순을 설득했다. 1954년 4월 망명했다. 비밀서류를 몽땅 갖고 나왔다.

마누라도 못 믿는 스파이 세계

그의 부인은 암호 담당으로 근무하는 같은 스파이였지만 자신의 망명에 대하여 일체 알리지 않았다. 말이 부부지 스파이 일하기 위해 맺어진 관계였다. 위장 부부인 셈이다. 아이도 없었다.

상의했다가 보고되면 볼코프처럼 마취시켜 모스크바로 보낸다. ‘나 혼자 결행해야 한다. 안전하게’

부인은 대사관 보안요원에게 협박당했다. “당신 남편 페트로프는 벌써 죽었다. 아는 거 털어 놔.” 협박과 구타가 이어졌다.

부인은 대사관에 구류돼 구두 신을 짬도 주지 않고 질질 끌려 소련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급유하느라 다윈에서 기착했다. 감시 요원 2명은 무기가 없었다. 혹시 남편이 살아 있는 건 아닐까. 부인은 그 틈에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미안하다며 망명을 권했다.

페트로프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보부에 알렸다. “내 아내가 모스크바로 끌려가고 있다. 지금 다윈에 있다. 급유 중이다.”

제3화

비탈리 유르첸코(Vitaly Yurchenko)는 49살 KGB 25년 경력의 장군 승진 예정자다. 1985년 8월 로마에서 망명 신청을 했다. 미국으로 와 CIA 안전가옥에서 진술을 진행했다. 아는 사실을 다 털어놓은데 3개월이 걸렸다.

미국에서 안전하게 살 대책을 마련할 단계였다. 기념할만한 날이었다. 외식하러 워싱턴 조지타운의 프랑스 식당에 갔다.

“나는 납치돼 미국으로 끌려왔다”

식사 나오기 직전 유르첸코가 일어섰다. 산보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CIA 요원들은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곧 오겠지 하며 기다렸다. 나타나지 않았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니 소련대사관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었다.

며칠 후. 소련대사관에서 유르첸코 기자회견이 열렸다. “나는 납치됐다. 마취주사를 맞아 정신 잃은 채 왔다. 내 조국으로 돌아가겠다.”

미국정부는 할 말을 잊었다. 출국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닭 쫓던 개 꼴 됐다.

돌아가면 총살 100%, 그런데도 돌아간다? CIA의 망명자 조사 수준을 염탐하려던 위장 망명이었나? 아니면 되돌아가서 미국 스파이 노릇을 하려는 것인가?

소련 대사관 앞은 FBI에서 상시 감시한다. 그날 밤 생판 모르는 이가 들어가는 걸 목격했는데 그가 유르첸코라는 걸 알지 못했다. 미국의 CIA가 미국의 FBI에게 그런 자료를 줄 리가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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