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범죄사회학] 사기꾼의 최고경지는 어디까지
영화 ‘자유부인’포스터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지위, 직업 그리고 위상을 은연 중 보호하려고 한다. 방위기제가 작용한 것이다. 성과 공격 충동은 인간 공통의 사악한 욕망이다. 이것을 억눌러 위신을 지킨다.
억제하지 못하면 별 생각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관료를 비롯하여 학자·사장·대기업 사원·학교 선생·기자 등 우리 곁의 사람들은 허언을 즐긴다.
두뇌회전 빠르고 성격 활달하고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인 경우가 흔하다. 이제 그들은 남을 속이는 길로 나선다.
표정은 다양하고 눈도 부리부리 하며 연기도 일품이다. 곧 일확천금을 벌게 해줄 것처럼 한다. 천국 가게 해주는 교주로 변신한다.
‘꾼’이란 대저 직업병이다. 헛된 생각을 사실인 양 말하는 공상허언증 즉 공상을 현실인 양 얘기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남 흉내 내는 데 재주 있는 연기성 인격장애자다. 이들은 어느새 재벌 2세가 되고 대통령 조카도 된다. 물론 가짜다. 연기가 곧 사기 꾼으로 일류 연기가 능숙하다.
‘리파똥’이라 불리는 이들 일당은 사기를 쳐야 살맛이 난다. 한건 성공해 돈 들어 온 날 기분 좋게 분배하고 거하게 회식한다.
“동티 나면 안 되느니라. 여기 위스키 잔뜩 뿌리고 저기 브랜디 듬뿍 뿌려라. 우리 사기신령님께 옴 붙지 말라 기도하고. 큰 거 딱 한 건 하며 ‘사기세계’에서 손 씻을 대형사기 딱 하나만 걸리게 기도하자” 기원하면서 다음 건 계획을 세운다.
“피부과 의사입니다.” “재벌가 손자인데요.” “S대 교수인데···.” 모두 사칭이다. 직업이나 혈연관계를 거짓으로 속여 말한다. 사기의 고전 수법이다. 수없이 속고 들통 나도 반복된다.
‘가매 엘리자베스 하매하’ 직업은 미군 파일럿, 부친은 하와이 가매 하매하 왕의 후예, 모친은 엘리자베스 여왕. 재산 50억 달러···.
머리는 금발로 염색, 얼굴은 코 높게 성형수술 한다. 백인스럽다. 하와이 왕의 자손과 영국 여왕의 혼외정사로 낳은 게 자신이라고 속인다.
성형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준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니 스토리도 속 보인다. 그런데 그에게 사기를 당한다. 많이 떼인 사람은 85만 달러에 이른다. 당당하다. 그러니 의심을 할 수 없다.
또 있다.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 약한 틈을 파고든다. 기도하러 와서 하는 이런 얘기 저런 소문 다 기록·정리해 둔다. 고민의 씨앗은 의외로 단순하다. 여자는 남편 바람기와 자식 문제, 남녀 공통은 고질병이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기회를 포착해 가볍게 던진다. “조상 혼이 이승에서 방황한다. 나쁜 일은 그래서 생기는 거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러면서 몇백만원을 쉽게 턴다.
혼이 정말로 여기에 있다 저기로 갔는지 묻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니 확인할 재간이 없다. 가셨다 믿고 지낸다. 뻔한 수작이지만 돈 날렸다 말 못한다. 해봐야 속만 상하니까.
결혼사기도 마찬가지다. 열이면 열 돈 갈취다. 몸은 기본이다. 여성이 떼이는 경우가 99.999%. “왜 다 주는 거냐?” 물으면 “결혼 상대니까. 어차피 결혼할 건데 내 돈이 그이 돈이고 그이 돈이 내 돈 될 텐데 미리 건네면 어때서요”라고 대꾸한다.
그런데 오산이다. 받은 사람 입장에선 당신 돈도 내 돈, 내 돈도 내 돈이다. 돈 준 여자는 받은 남자를 묶어 놓는 효과가 있다고 보지만 큰 오해다. 사기꾼 목표는 단순 명쾌하다. ‘돈 먹고 빠지기’다. 발목 잡히지 않게 즉각 행방을 감춘다.
법원이 북새통이었다. ‘색마’라는 그를 보려고 방청객이 쇄도했다. 적게는 5천에서 많게는 1만명의 여성이었다. 한 해 무려 70여명을 농락했다. 여대생과 상류층 재원도 많았다. 1심에서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 무죄 선고가 나왔다. 재판관은 말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한다.”
관계한 여인 중 단 한명만 처녀였다. 그가 석방된 후 그녀와 동거했다. 검찰 항고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훤칠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 출중한 매너였다. 해군장교 시절 배운 댄스 솜씨가 대단했다. 1955년 박인수 사건이다.
이후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순결은 법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유행을 탔다.
43살 수잔 클라텐은 독일의 5번째 갑부다. 8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기사에게 걸렸다. 섹스장면을 몰래 촬영하여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750만유로(128억원)를 뜯어냈다.
인기여우 앤 해서웨이에게 스물아홉의 청년이 접근했다. 둘은 뉴욕의 화려한 펜트하우스에서 동거했다. 훌쩍 4년이 지나갔다. 결말은 남자친구의 구속, 죄명은 사기였다. 동거남은 등쳐먹기에 이골 난 상습범이었다. 모국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을 팔아 돈 뜯어냈다. 미국에서는 교황청 최고 재무 책임자라 속였다. 맨해튼 부자들 호주머니를 내 지갑으로 만들었다. 아버지도 같은 직업에 종사했다. 부자가 같은 업종에서 악명을 날렸다.
무엇에 홀렸을까? 수려한 외모와 특출한 유혹 수법. 초기 선물공세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돈을 물 쓰듯 한다. 적자야 많이 났지만 후일을 도모하는 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