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스파이 세계, 그러나 죽음 맞을 시간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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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각하! 독일 암호 책이 필요하십니까?” 1914년 9월 영국의 처칠 해군장군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무관이었다. 둘은 평소 친한 사이였다.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독일 해군 암호 책에 대하여 관심 있으신지요?”

“아, 그럼요! 있다마다요.”

“그러시다면 영국 해군을 러시아로 보내시지요. 본국에 연락해 놓겠습니다.”

며칠 전 발트해 독일 전함 마그데부르크가 침몰했다. 익사한 수병 몸에 철사로 묶인 책자가 있었다. 알파벳과 숫자로만 되어 있었다.

독일 해군 암호 책이었다. 전사하면서도 몸과 함께 바다 밑에 숨기려했다. 러시아 해군은 이런 게 전쟁에 왜 필요한지 몰랐다. 수병과 대포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보기관이나 군이나 모두 수령을 거절했다. 애물단지였던 거다. 그래서 처칠의 손에 들어왔다.

영국 해군 정보부 암호 전문팀은 이를 토대로 독일 해군기지와 군함 간 교신내용을 대조했다. 현재 사용 중이었던 암호였다. 횡재나 다름없었다.

가난 탈출의 길은 스파이의 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정보부 비엔나 지부장 알프레드 레들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하면서 상관의 눈에 띄기로 결심했다.

정보맨으로서의 재능이 만점이었다. 대화를 주머니 속 메모지에 기록했다. 들키지 않고 사진 찍기도 능란하고 지문채취도 잘 했다.

헝가리 제국 정보국장 기슬(Giesl) 백작의 맘에 들었다. 이후 초스피드로 승진해 1913년 프라하 지부장으로 전근했다.

비엔나 지부장은 맥시밀리안 론지 대위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론지는 레들의 후배이자 수제자였다. 선배 레들은 두뇌 명석한 야심만만형인 반면 후배 론지는 평범했지만 성실하고 근면했다. 가르침을 잘 활용했다.

존경하는 사부가 간첩?

우체국 우편물을 검열 중 주소가 단순히 Opera Ball 13으로 된 봉투가 눈에 띄었다. 많은 현찰이 있었다. 곧 감시에 들어갔다. 미행하자 용의자는 눈치 채고 택시를 타고 도망갔다. 호텔 정문에서 하차해 뒷문으로 빠져나가 다른 택시로 도주했다. 택시 회사를 뒤져 마지막에 내린 호텔을 알게 됐다.

손님이 놓고 내린 물건이 있었다. 손톱깎이와 가죽 주머니를 손에 넣고 보니 후배 눈에 익은 것이었다. 설마하고 호텔로 갔다. 직원에게 가죽 주머니 보이며 주인을 아느냐 물었다. 로비에 앉아 있는 신사를 가리켰다. 예감이 적중했다. 레들 대령이었다.

사부에게 정리할 기회를

대령은 태연스럽게 호텔을 나갔다. 현찰을 꺼내 잘게 찢어 화단에 버렸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였다. 대위는 쪼가리를 하나하나 모았다. 후배는 선배가 가르쳐 준 스파이 요령을 그대로 실천했다.

둘이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론지 대위! 화장실 갈 시간 좀 주시게.” 잠시 후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1913년 5월 25일이었다.?후배는 선배가 자살할 걸 알면서 허용했다. 반역자를 처리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같은 조직원의 등 뒤에 칼 꽂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건 부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죽을 기회를 부여했다. 권총도 빌려 줬다. 그 시대 스파이 업계의 풍습이었다.

사실 레들은 호모였으며 성욕이 강했다. 우연히 게이를 만나는 것으로는 욕구를 채우지 못했다. 레들은 남창을 샀다. 돈이 많이 들었다. 1903년 러시아 스파이가 레들의 성적 취향을 알아채고 협박했다. 11년간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작전을 훤히 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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