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그 많던 놋그릇은 어디 갔을까?
[아시아엔=김중겸 전 충남경찰청장, 인터폴 부총재] 언제부턴가 취미 하나 생겼다. 티스푼과 티포크 닦기다. 은으로 만든 거라 면 수건에 치약을 묻혀 닦는다.
까만 때가 벗겨지면서 은빛 광채가 되살아난다. 그 빛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집안에 금 수저나 귀금속, 보석류는 없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살아왔는지···. 더러 치장도 하며 살아야 하는데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사람에게는 영 미안하다. 금붙이 하나라도 선물했어야 하는데···. 모르고 살았나 외면하고 살았나. 분간 안 된다. 어쩌면 그 둘 다일지 모른다.
티스푼과 티포크 열두개가 우리 집 귀금속의 전부다.
놋쇠의 추억
은 티스푼을 손질하다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모친세대의 부엌은 쭈그려 앉아서 아궁이에 불을 땠다. 부뚜막은 왜 그리 낮았는지 허리 굽히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닫는다.
어머니가 “사내는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 하셔도 나는 쪼그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지푸라기에 붙은 불을 뒤적거렸다. 엄마에게 도움 되기는커녕 일거리 더 만들어 드렸다.
음력 팔월 되면, 엄나는 놋쇠그릇을 꺼내셨다. 뒷간의 재를 가져와 양잿물 섞고 볏짚에 묻혀 문질렀다. “엄마 양잿물 이거 독약이잖아?” “독이 때로는 좋은 거란다.”
약에도 독이 들어간다. 빨래도 양잿물에 빨아야 하는 게 있다. 그래야 깨끗해진다. “과한 게 문제지 적당하면 괜찮단다.”
두번 지냈던 제사
추석 차례 지내고 나면 할아버지 제사, 그리고 그 며칠 후 할머니 제사가 다 음력 팔월에 있다. 신나게 닦던 그 놋쇠 그릇들, 다 어디 갔는지···.
아버지는 추석 전날, 어머니는 추석 다음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시면 팔월은 ‘제사 대목’이다.
집사람은 그 날짜를 어쩌면 그리도 잘 외는지 틀림없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지요? 일찍 들어오세요.” 기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기 일쑤였다.
큰 고모, 작은 고모 두분 모두 크리스천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고모님들 몫이다. 먼저 큰 고모 주재로 추도예배를 드린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기도한다.
추도예배가 끝나면 식사를 마친 후 내가 정거장까지 모셔다 드린다.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고 귀가해 어머니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 충청도 전통 유교식이다. 수분과 저분을 살아 생전 좋아하셨던 음식으로 옮겨가며 술 올리고. 절도 하면 뭔가 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큰 고모 돌아가시고 순자 누나가 대리로 오더니 작은 고모 연세 구십으로 거동 힘드시면서부터 우리끼리 한다. 작은 고모께 미리 전화 드리고, 끝내고 나서 다시 말씀 드린다.
나이가 그리 됐다. 아들 부부에게 차례와 제사를 상속했다. 아들네 집에 가서 한다.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고맙다는 생각 거듭했다.
차례 마무리는 역시 둘러앉아서 마신 커피다. 맛 있었다. 세상 알게 모르게 변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다. 세월 흐름을. 지금 나이쯤에서 알게 됐다. 어느새 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