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단상···명절증후군과 ‘송편’의 전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필자의 일산 덕산재(德山齋) 창밖으로 떠오르는 올 한가위 달은 유난히 밝았다.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떠오르는 한가위 단상(斷想)이 가지가지였다. 오래 전에 열반(涅槃)하신 부모님 얼굴도 떠오르고, 먼저 간 도반과 벗들, 옛사랑의 아련한 추억과 그리운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외에도 나라걱정, 일본과의 경제전쟁 추이(推移),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은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 또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의 추석맞이는 어떠할까 등등 오만 가지 상념(想念)에 한때나마 달콤한 생각에 젖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명절우울증’에 생각이 미쳤다.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1921명을 대상으로 ‘명절 우울증 경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 40%가 명절 우울증을 경험했다. 특히 기혼여성은 남성에 비해 1.5배나 높다. 또한 법원행정처가 발표한 이혼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루 평균 200여건인 이혼신청은 명절 연휴 후엔 500여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설 연휴 직후에는 하루 838건, 지난해 추석 직후엔 1076건의 이혼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명절을 폐지해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하고 있다니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주원인 중의 하나가 송편 빚기 등 가사 분담 문제라고 한다.
해결책으로 필자는 오래 전부터 설날과 추석은 원불교 예법대로 교당에 가서 ‘합동명절향례’를 지낸다. 깔끔하고 경건하며 엄숙한 가운데 올리는 합동차례는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칭송(稱頌)에서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우리 형제들은 나보다 먼저 천주교에 귀의 한 탓에 처음에는 원불교의식으로 하는 차례에 조금 주저하는 듯했으나 이제는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음식도 안 차리고 설거지와 청소를 안 해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가 다른 분들도 칭송을 하니 ‘명절 우울증’이 걸릴 이유도 없다.
조금 아쉬운 것은 온 가족들이 둘러 앉아 송편을 빚으며 나누던 정감(情感)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를 읽으며 새로운 감각(感覺)이 떠올랐다. 서정주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빼어난 작품을 많이 냈다.
‘국화 옆에서’ ‘견우의 노래’ ‘무등을 보며’ ‘자화상’ ‘신부’ 등 토속적이면서도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 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밤, 마당, 웃음, 노루와 올빼미, 송편 빚는 식구 등등···.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인가? 게다가 휘영청 달 밝은 마루에서 달빛과 웃음과 수다까지 섞어서 송편을 빚는 이 추석 풍경!
달빛에 꽃가지가 휘어진, 달도 깔깔 웃는 풍경화다.
송편이 달 모양이 된 유래가 있다. 백제 의자왕 때 거북이가 땅에 올라왔는데, 그 등에 쓰여 있기를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고 쓰여 있었다. 의자왕이 점술가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점술가가 “백제는 만월이라 점점 기우는 달이고, 신라는 반달이라 점점 차오르는 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후 삼국이 통일 되어 반달로 송편을 빚으면 점점 차오르는 달이 돼 더 낳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어 송편이 반달모양으로 빚게 됐다 한다.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바른 때에 만든 예쁜 송편은 정화신불(淨化身佛)이요, 삿되고 어두울 때에 만들어서 미운 송편은 편화신불(偏化身佛)다.
송편 빚기 하나라도 정성들여 기쁘게 사랑으로 빚으면 명절 증후군을 싹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