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이 자신의 전생이라는 ‘히말라야’ 산양을 사고파는 방식은?

엄홍길, 그는 도전의 아이콘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시련이 닥쳐올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젊은 시절 필자는 전 세계 원불교교당을 찾아 신앙과 수행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거의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몇 년 전 울릉도 둘레길을 걷다가 갑자기 다리가 아파 주저앉고 말았다.

지난 30여년간 앓아온 당뇨병으로 인해 양쪽 다리의 동맥이 막혔다는 것이다. 즉각 시술(施術)을 받았다. 통증은 사라졌으나 걸을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재차 수술을 받아도 거의 걷지를 못한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이제는 거의 다니지를 못하고 겨우 택시를 이용해 1주일에 한번 원불교 여의도교당으로 달려가 법회(法會)를 보는 것이 고작이지다.

어찌하면 좋을까? 그 해답은 히말라야 고산족들이 산양을 사고파는 방식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 산양

그들은 가파른 산비탈에 양을 두고 살 사람과 팔 사람이 함께 지켜본다. 양이 풀을 뜯으며 산비탈 위로 올라가면 값이 오르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값이 내려간다. 위로 오르는 양은 목지(牧地)를 따라 넓은 산허리에 오르지만, 내려가는 양은 협곡바닥에서 굶어 죽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험한 비탈길을 만났을 때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는 것이 바로 고난을 극복하는 길이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유태 민족사에 큰 교훈이 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가고 있었다. 날씨는 타는 듯 뜨거웠고 길은 지루하기 한이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힘이 다 빠진데다가 목이 타서 죽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격려한다. “아들아 용기를 내라. 우리의 선조들도 이 고난의 길을 다 걸어갔단다. 이제 곧 마을이 나타날 것이야.”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 이때 그들의 눈에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이것을 본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저것 보세요, 우리 선조들도 여기서 모두 죽어갔지 않아요. 도저히 더 이상 못 가겠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은 이 근방에 동네가 있다는 표시다.”

이렇게 죽을 만한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버지와 아들은 무사히 그 사막을 지나갔다. 흔히 좌절해 버리기 쉬운 죽음의 상징인 무덤 앞에서 생명과 희망을 찾을 줄 아는 지혜를 인간은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사람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희망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유(香油)는 꽃이나 열매에서 뽑아낸 것이 아니다. 고래의 기름에서 뽑아낸 것이다. 그것도 건강한 고래가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더욱 향기로운 향료가 추출된다. 우황(牛黃) 또한 마찬가지다. 건강한 소에서 추출되는 것이 아니다. 병든 소에서 우황이 나와서 우리에게 해열, 진정, 강심제 등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괴테는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은 대부분 고난을 통하여 대성(大成)한 인물들이다. 음악가로 청각을 잃고도 이를 극복한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력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