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기’와 ‘하심’···두달 남은 2019년 이 두 단어를 가슴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굴기하심(屈己下心)이라는 말이 있다. 굴기는 몸을 일으킨다는 말로,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다가 성공하여 이름을 떨치는 것을 말한다. 하심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한 경지에 이르고 보면 더욱 하심하지 않으면 화를 불러 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스로 잘난 체 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겸손해 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높여주어야 한다.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제가 스스로 높은 체하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지고, 항상 남을 이기기로만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게 되느니라” 하셨다. 이 법문(法門)의 핵심은 교만과 겸손의 결과다.
첫째, 제가 스스로 높은 체하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지는 진리다. 내가 높다는 생각으로 교만하면 결국 떨어진다. 공덕을 쌓아 놓고도 공덕을 쌓았다는 상(相)에 집착하면 그 공덕마자 사라진다. 그리고 정당한 도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은 좋지만, 이 또한 높다는 상에 집착하면 그 높은 지위에서 추락하기 마련이다.
둘째, 남을 이기기로만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게 되는 진리다. 기운과 기운이 상통(相通)한다. 내가 상대방을 이겨야겠다고 하면 상대방 또한 나를 이겨야겠다는 기운이 생겨난다. 강한 것은 언제인가는 부서진다. 하지만 물은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이는 부드러움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임을 나타낸다.
주역에도 “굴기하심으로 나를 낮추어 마음을 겸손히 하면 남들이 존경하게 되고, 굴기상심으로 나를 높이려 한다면 남들은 오히려 무시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항상 어눌한 듯, 부족한 듯, 겸양의 도를 통해 자기 자신의 교만함을 극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일원상의 둥근 진리처럼 나를 낮추고 살아가다보면 상대방과도 척(慽)을 지지 않을 것이며 상생(相生)의 인연을 맺게 될 것이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를 하여 스무살에 경기도 파주군수가 된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산사(山寺)를 찾아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산사 스님은 대답을 하였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잔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계속하여 차를 따르는 것이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십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틀에 세게 이마를 부딪히고 말았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아픈 것은 대부분 이기려는 마음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나도 부족하면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나도 부족하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질책하고 단죄하면 결국 그 사람과의 관계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필자가 요즘 하심을 제대로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스승님의 꾸중을 들었을 것이다. 굴기 했으면 반드시 하심을 해야 한다. 마음에 교만심이 많으면 천한 과보에 떨어지는 만고의 진리를 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