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 깨나 하는 분들께 드립니다···‘공자의 자절사’

알릴레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전 장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어제 TM승님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잘 한다 잘 한다 했더니 엉덩이에 뿔이 난 것 같다”는 말씀이다. 질책을 받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필자 글에 겸손이 부족하구나 하는 참회의 마음이 들었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아닌가. 공자 같은 성현도 겸손하시기가 이를 데 없어 네 가지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셨다고 한다.

그 네 가지란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으며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고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編)에 보면, 이 네 가지를 ‘자절사’(自絶四)라고 한다. 공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으셨다고 했다.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고, 기필코 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셨고, 이기심이 없으셨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성(本性)을 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가 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말씀하신 ‘절사’(絶四)란 ‘네 가지를 끊다’라는 의미다.

공자가 오랜 경험과 통찰을 통해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했을 만큼 이 ‘자절사’는 우리 인생에 아주 중요하다.

첫째, 무의(毋意). 우리는 쉽게 판단하며, 함부로 억측하기 일쑤다. 그러니까 ‘무의’는 일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일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상식과 편견은 종이 한장 차이다. 모든 일을 조사하고 분석하며 진행할 수는 없지만, 본인의 직감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사실과 다름이 없는지, 지나치게 편견에 의존한 판단은 아닌지 자신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귀찮더라도 애매한 것은 한번 더 조사해 보고 판단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둘째, 무필(毋必).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만 옳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옳고 그름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 세상에 100% 한쪽만 진리인 것은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조건부이고 상대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늘 진리와 믿음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다름’으로 풀어 나간다. ‘옳고 그름’으로 풀어 가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너그럽고 부드럽게 덕을 베푸는 것이 좋다.

셋째, 무고(毋固). 고집을 끝까지 부리지 않는다. 살다 보면 자기 주관을 관철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까지 강하게 고집을 부려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자기 고집대로 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웬만한 것은 적당히 넘어가고 중요한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넷째, 무아(毋我). 무아라는 것은 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너무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우리 사회는 뾰족이 구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그러니 자기가 나서야할 자리에서는 최대한 겸손한 태도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공자의 ‘자절사’를 돌아보면서 한 없이 부끄러워짐을 금할 수가 없다. 아직 멀었다. 그걸 모르고 저 잘났다고 설치는 필자 모습을 보고 스승님께서는 얼마나 한심해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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