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등 ‘언어 파괴 현상’ 심각···“중학생이 이해 못하면 실패한 방송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10월 9일이 573돌 한글날이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유네스코에서 세계 최고의 문자로 지목했다. 그 우수성은 세 가지로 증명되는 것 같다.
첫째, 창제자와 창제원리, 창제시기를 알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다. 세계의 그 어떤 글자도 ‘창제자’와 ‘창제시기’, ‘창제목적’, ‘창제원리’를 알 수 있는 글은 없다. 오직 한글만이 유일하다.
둘째, 훈민정음(訓民正音), 그 이름으로 창제목적을 드러낸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한글의 창제 목적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것은 훈민정음의 사용설명서나 다름없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에서 세종대왕이 직접 밝히신 한글을 만든 이유다.
셋째,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다. 한글의 기본 원리는 상형(象形)이다. 상형은 ‘모양을 본뜨다’라는 뜻으로 훈민정음에서 세종대왕은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떠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글의 모음과 자음은 기본 형태에서 ‘가획’이 추가되거나 자기들끼리 결합하여 새로운 문자를 탄생시키게 됐다. 한글은 소리 나는 것을 적는 언어이기 때문에 발음할 수 있는 모든 말을 글로 적을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실용적인 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글파괴 현상은 인터넷시대를 맞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컴퓨터, 인터넷, SNS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주고받는 한글은 온통 축약되거나 뒤틀려 있는 것이다. 또한 생활 주변에 걸려있는 각종 현수막이나 광고물에서도 언어 파괴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정부기관이 홍보를 위해 내건 표어에서 국적 불명의 단어·어휘들이 축약되거나 만들어져 마구 사용되고 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51조 3항에는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반말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방송사들이 이런 신조어 등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0개 프로그램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참으로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서 울고 가실까 걱정이다. 세종대왕의 심정 그대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원불교를 창교(創敎)했다. <대종경>(大宗經) ‘전망품’에 보면 한 제자가 한문 지식만을 중히 여기는 것을 보고 이런 말씀을 했다.
“도덕은 원래 문자 여하에 매인 것이 아니니, 그대는 이제 그 생각을 놓으라. 앞으로는 모든 경전을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편찬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말로 편찬된 경전을 세계 사람들이 서로 번역하고 배우는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니, 그대는 어려운 한문만 숭상하지 말라.”
또한 수행품에서도 이렇게 경계(警戒)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경전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야 도가 있는 것으로 인증하여, 같은 진리를 말할지라도 옛 경전을 인거하여 말하면 그것은 미덥게 들으나, 쉬운 말로 직접 원리를 밝혀줌에 대하여는 오히려 가볍게 듣는 편이 많으니, 이 어찌 답답한 생각이 아니리요.”
이와 같이 법설도 어렵게 하면 할수록 법설자의 권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한 방송사 PD는 “중학생이 이해를 못하면 실패한 방송이다”라고 했다. 설교나 강의도 아는 만큼 쉽게 하는 것 같다. 자기가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남을 이해시키기 어렵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어려운 법설을 하는 것이 죄 짓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근래에 어려운 법설을 하거나 너무 길게 설교를 하는 성직자가 많다. 어려운 법설과 너무 긴 설교는 교도(敎徒)의 기를 죽일 위험이 있다. 중학생이 이해 못하는 법설은 죄 짓는 일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