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친박’ 세력께 권함···불가근불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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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성어중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있다.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 때 일어났던 예화에서 인용된 것이다.

마지막 승자가 된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에게는 두 명의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그 신하의 이름이 범려(范蠡)와 문종(文種)다. 당시 월왕 구천은 경솔하게 오(吳)나라를 침략했다가 대패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다. 그러나 월왕 구천은 문종과 범려라는 인재를 얻어 힘을 비축한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월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월왕 구천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두 신하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지혜를 모았다. 한마디로 월나라의 왕이지만 두 스승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다. 왕과 신하의 위계를 떠나 파격적으로 사제지간의 도리를 다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월나라가 오나라를 이기고 강성해 졌을 때 범려는 문종(文種)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무릇 월왕 구천이라는 사람은 목이 길고 입이 튀어 나와 매의 눈초리에 이리(狼)의 걸음을 하는 상(相)이오. 이 같은 상을 한 사람은 불가근불가원 즉, 어려움을 같이 할 수는 있어도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만일 그대가 그를 떠나지 않으면 그는 장차 그대를 죽이고 말 것이오. 그러니 어서 이 왕궁을 떠나 그대의 살길을 도모하시는 것이 좋겠소.”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범려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문종을 버려두고 혼자서만 월왕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려가 예언하듯 월 왕 구천은 문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내놓은 비밀스런 계책으로 오나라를 정복하고 전국을 취할 수 있었소. 그대가 말한 아홉 가지의 계책 중 지금까지 겨우 세 가지만을 사용하였는데도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소. 나머지 여섯 가지는 아직 그대가 구사하지도 않고 있소. 남은 여섯 가지 계책 중에는 나를 토살(討殺)하여 왕위를 찬탈하는 계책도 있을 수 있으니 바라건대 나머지 계책은 나를 위해 죽어 지하에서 오나라를 도모하는데 써주기 바라오.“

그러면서 월왕 구천은 문종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렸다. 한마디로 문종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것이다. 그때서야 범려의 말을 듣지 않은 문종은 후회를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남영 출신 재상이 오히려 월왕의 포로가 되었구나. 이후 멸망하는 나라의 충신들은 반드시 나를 들먹일 것이다.”

사람의 관계란 멀리 하면 서운한 감정을 가진 채 소원해지기 쉽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살다 보면 가깝게 지내던 동지나 동료가 하루아침에 실망하여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그게 오해든 배신이든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충격은 더 큰 법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적당한 처세(處世)로 살아가기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용기(勇氣)란 무모하지도 않고, 겁을 먹지도 않는 상태다. 절제(節制)란 방종도 아니요, 무감각하지도 않은 상태”라며 “관대(寬大)함이란 낭비도 인색도 아닌 상태고, 긍지(矜指)란 오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가근불가원을 철칙으로 삼을 때, 비로소 관계에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존경받는 수도승(修道僧) 아나가리카 고빈다는 “산(山)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고 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미치도록 사랑하여 그 뜨거운 불꽃에 데이고, 그것이 두려워 너무 멀리 떨어져 얼음처럼 차갑고 외롭게 지내는 어리석은 인생도 또한 많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불행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집착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불가근불가원’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친문, 친박 세력도 이런 이치를 알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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