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25] 김재순의 토사구팽론···한신·장성택·이숙번 등 2인자의 운명
새가 잡히면 활은 감추어지고,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삶아 죽인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나 아니면 지가 대통령이 됐겠어?”(김재순의 ‘토사구팽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계기는 아마 김영삼 정부 때 김재순 전前국회의장 때문일 거다. 김재순 국회의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막역한 친구로, 1987년 대선 때 “나야 이북 출신으로 통일이 염원이지만, 김영삼이야 대통령이 꿈이 아닌가, 내가 그를 돕지 않고 누굴 도우랴”라는 말과 함께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데 아주 혁혁한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김영삼 대통령 집권 초에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물갈이 대상이 되어 정치인으로서는 치욕이라 할 수 있는 출당조치를 당하자 “나만 돈이 많나? 왜, 나만 갖고 지랄이야? 국회의장 출신인 나를. 거기다 난 김영삼 자기를 위해 충성을 다 바쳤는데. 나 아니면 지가 대통령이 됐겠어? 근데 이런 나를 버려?”라는 막말에 가까운 발언과 함께 “토끼를 잡아먹은 사냥꾼은 마지막에 사냥개까지 잡아먹는다”는 ‘토사구팽’의 고사성어를 언급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토사구팽은 <사기>의 ‘월나라 왕 구천세가’에 처음 나오는 고사로, 충성을 다한 부하의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냉혹하게 내팽개친다는 뜻이다. 월나라 왕 구천은 범려范?와 문종文種의 도움으로 오나라 왕 부차를 고소산姑蘇山에서 물리쳤다. 곰쓸개를 맛보는 ‘상담嘗膽’의 인내로 부차에게 복수를 한 구천이지만 그의 성품이 일관되지 못하기에 끝까지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예견한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서 문종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오. 월나라 왕 구천이라는 사람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쪽하니, 정녕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소. 그대는 어찌하여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이오.(월나라 왕 구천세가)
새가 잡히면 활은 감추어지고,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삶아 죽인다는 ‘조진궁장鳥盡弓藏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이치를 몸소 깨달은 범려는 제나라로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문종은 화를 피할 수 없었다. 범려의 편지를 받은 문종은 뒤늦게 병환을 핑계로 구천과의 만남을 피했지만 모반을 꾀한다는 주변의 헐뜯음을 받아 구천 앞에 불려나가게 되었다. 구천은 문종에게 칼을 내어주며 그대가 오나라를 칠 수 있는 일곱 가지 계책을 내게 알려주었는데 그 중에 세 가지만 써서 오나라를 패배시켰으니 나머지 네 가지 계책은 지금 그대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이제는 그것을 선왕先王이 있는 곳에 따라가서 시험해보라고 한다. 선왕에게 가서 나머지 계책을 쓰라는 구천의 말은 이제 너는 쓸모가 없으니 알아서 죽으라는 섬뜩한 말이다. 사람을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판단하는 통치자는 그 인물의 비상한 쓰임새가 다하면 쉽게 버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구천의 심리는 간단한다. 토사구팽하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의 입지를 빼앗을 인물이 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문종은 구천이 준 칼로 자결한다.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는 신뢰와 충성의 관계라는 단순논리로는 설명을 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항상 욕망과 욕심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외면화되어 둘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범려처럼 늘 관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통찰의 자세가 있다면 파국의 비참으로부터 자신의 안위를 건사할 수는 있다.
공로가 천하를 덮게 되면 상을 받지 못한다
2인자들의 운명은 늘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다. 범려와 문종은 지략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2인자의 위치에 설 수 있었지만 그들의 지략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범려는 그러한 이치를 통찰하고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문종은 그것을 간과했기에 비극적인 삶을 맞이했다.
한 고조 유방의 충신이었던 한신도 문종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항우와 유방이 대립하고 있을 때 천하 대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있다는 것을 안 괴통?通은 한신을 만나 천하를 삼분三分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에 나오는 ‘천하삼분론’의 원저작자는 사마천이다. 제갈량이 그것을 표절한 것이다. 괴통의 논리는, 지금 유방과 항우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려있어 만약 유방을 도우면 항우가 패할 것이고, 항우를 도우면 유방이 패할 형국이니 당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말고 천하를 삼분하여 솥의 발처럼 서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논리와 함께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면서 “옛날 대주 종種은 범려范?와 함께 멸망해 가는 월나라를 다시 있게 하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죽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