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대신 황혼연애 한번 해보실래요?

때로는 전혀 상상 못한 일이 현실이 되곤 한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얼마 전 지인(知人)이 나이 70을 훌쩍 넘기고 혼인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배우자를 사별하고 혼자 지내기가 힘들어서였다는 것이다. 양쪽 다 재산은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겨우 살 집과 생활비 정도를 챙겨 양가 가족들의 축복 속에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그 용기가 참 대단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힘들어하는 늙은 아내라도 함께하는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황혼엘레지’라는 말이 있다. 슬픔을 노래한 악곡(樂曲)이나 가곡(歌曲)을 프랑스어로 엘레지(?l?gie)라고 한다. 우리말로 비가(悲歌) 또는 애가(哀歌)라 할 수 있다.

옛날 최양숙의 샹송 ‘황혼 엘레지’가 생각난다.「

영원한 사랑 맹세하던 밤
정열에 불타던 영원한 사랑 맹세하던 밤
아아아 흘러간 꿈 황혼 엘레지

지금 이 나이에 그 정념적(情炎的) ‘황혼’을 무척 아름답게 불태울 법도 하다.

요즘 ‘황혼의 애가(愛歌)’가 뜨겁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이성을 만나 친구처럼, 때론 연인(戀人)처럼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며칠 전 경향신문 기획기사에 의하면 세상이 급변하고 우리나라도 노령사회로 변화하면서 풍속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6년 후면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초고령사회의 혼인·사랑·연애 등 새로운 모습을 생생하게 열거하였다.

사랑에 빠진 노년 세 커플을 예로 들면서, 70·80대 노인들이 어떻게 황혼연애를 즐기는가를 설명한다.

근거리에 따로 살면서 때때로 함께 사는 커플도 있고, 동거생활만 유지하는 커플, 젊은이 못지않은 화려한 예식을 치르며 ‘부부’가 된 커플도 있다고 한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외롭고 쓸쓸한 독거노인들이 과거의 인습에서 벗어나 삶과 사랑을 새롭게 영위해 가는 풍경들이어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200년 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목민심서(牧民心書)』의 ‘진궁편’(振窮編)에 나오는 노인들의 행복을 위한 ‘합독’(合獨)이 생각났다. 사람이 처한 불행은 많기도 하지만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네 종류의 인간이 가장 불행한 처지라고 여겨왔다. 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 바로 그들이다.

다산은 목민관이라면 그들 네 종류의 불쌍한 백성들을 제대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에 대한 배려로는 홀아비와 과부가 함께 살아가는 ‘합독’의 정사(政事)를 펴야 한다고 권장했다. 조선시대는 혼인제도가 너무나 까다롭고 과부는 재혼이 참으로 어렵던 시대였다.

물론 ‘합독’은 다산의 창의적인 내용이 아니다. 옛날『관자(管子)』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릇 도읍에는 중매를 맡은 이가 있어서 홀아비와 과부를 골라 화합하도록 하니 이를 ‘합독’이라 한다.” 그런데 완고한 조선시대에서 누가 감히 합독의 정사를 펴서 과부와 홀아비가 황혼의 연애와 사랑을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었겠는가?

남성과는 다르게 옛날에야 여성의 ‘수절(守節)’은 최고의 부덕(婦德)이었다. 그런 도덕적 속박에서 과감하게 탈출하여 홀로 사는 여인이 홀로 사는 다른 남자와 합해서 살기를 바랐다면, 이는 여권신장의 높은 뜻이 있다. 하지만 “개가할 뜻이 있어도 부끄럽고 꺼리는 것이 많아 주저하게 된다(雖有改嫁之志 羞怯多端)”고 했다.

만약 관(官)에서 중매를 서서 처리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부끄럽거나 거리낌 없이 터놓고 황혼의 애가를 마음껏 노래할 수 있었다면, 다산의 ‘합독’은 얼마나 멋진 주장일까? 그러나 아직도 현실은 노인들의 ‘황혼 애가’가 녹록치 않다.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최근에는 이혼 및 사별 후 재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어르신이 늘어났다. 이는 과거 어르신들의 ‘체면문화’가 ‘실용문화’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어르신들의 연애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복지관 종사자들이 어르신들간 애정행위 등을 간섭하고 막는 문화가 있다”며 “이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기관 종사자들의 의식 변화도 요구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 황혼의 연가도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고독감과 외로움을 나누는 성숙한 사랑을 하는 커플들도 있지만, 쉽게 깨져버리는 사례도 숱하다. 그렇다면 새롭게 황혼애가를 부르실 분은 무엇을 조심하면 좋을까?

첫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켜본다.
둘째, 과거의 배우자와 너무 닮은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셋째, 폭력적인 사람인지 미리 확인한다.
넷째, 상대방 주변인들의 평판을 들어본다.
다섯째, 자식들과 재산 문제의 갈등을 미리 조심한다.
여섯째, 혼인신고를 하려면 자녀에게 먼저 알린다.
일곱째, 자녀와의 갈등으로 황혼애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행복이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라 했다. 특히 황혼의 사랑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물건은 잘못 사면 또 사면 되고, 반품이나 환불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은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은 후라야 이혼이라는 절차를 거친 후에 남남이 될 수 있다.

노후에 조금 외롭다고 ‘황혼의 애가’를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차라리 그런 외로움을 자신의 내생을 위해 잘 죽고 잘 태어날 수 있는 수행에 전념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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