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도자, 훌륭한 리더의 조건과 오바마 그리고 문재인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요즘 필자의 ‘덕산재’(德山齋)에는 아주 귀한 가족을 영입했다. 100년도 넘은 분재로(盆栽)로 이름을 ‘소사나무’라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소사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부 이남의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학명(學名)은 자작나무과로 ‘Korean Hornbeam’ 혹은 ‘소서목(小西木)’으로도 한다. 강화도 참성단에 소재한 소사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사나무는 메마름과 소금기에 강하며, 줄기가 잘려져도 새싹이 잘 나오는 등 척박한 조건에 잘 적응하는 나무다.

그래서 소사나무는 최소한의 영양분으로 겨우 삶을 이어가는 분재로 우리와 만난다. 분재는 작은 분(盆)에 나무를 심어 고목나무 모습으로 축소시켜 가꾼다. 소사나무는 너무 빨리 자라지 않고, 생명력도 강하며, 달걀모양의 잎은 2~3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여 분재 목으로는 아주 적합하다.

소사나무의 줄기는 회갈색으로 깊이 갈라지지 않으며, 직립하려는 성질이 강하지 않아 분재로 기르기가 적당하다. 또한 갈잎나무인 소사나무는 겨울에 잎이 지고 나면 섬세한 가지 뻗음이 예술적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된 소사나무는 연리지(連理枝)로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비록 원래는 둘이었으나 지금은 한 몸이 된 애틋한 ‘연리지의 사랑’을 보는 듯하다.

‘연리지’는 한 나무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나뭇결이 하나로 이어진 것을 말한다. 마치 화목한 부부나 연인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생명의 삶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소사나무의 아름다움이 그냥 이루어진 것일까?

꽃은 훈풍으로 피지만, 열매는 고통과 인내로 맺힌다. 100년도 넘은 세월 동안 세찬 바람에 흔들려야 하고, 부대껴야 하며, 가뭄과 홍수도 이겨내야 비로소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뚝 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리더, 훌륭한 지도자란 땀과 눈물의 밥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세상에 우뚝 설 수 없다.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 절망이 무엇인지, 슬픔과 아픔은 어디까지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름답게 성장할 수가 없다. 인간이 얼마나 초라하고 약한지, 배신과 치욕과 실패와 부끄러움을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세상에 지도자로 나설 수 없다.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의 관리 누사덕(樓師德 : 630~699)은 마음이 넓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동생이 높은 관직에 임용되자 그를 따로 불렀다.

“우리 형제가 함께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남의 시샘이 클 터인데, 너는 어찌 처신할 셈이냐?” “예, 저는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닦겠습니다.” 이 동생의 대답에 형이 나지막이 타이른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를 것이야.”

화가 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서 닦으면 그 사람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당부였다. 이것이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고사(古事)다.

이런 누사덕의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지도자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선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모욕적인 악플이 범람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과 막말을 여태껏 지우지 않았다. ‘사이버 침’이 SNS에서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런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包容) 정치가 다시 빛을 발한 적이 있었다. 2015년 그는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했다.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었다.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000여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어떤 여성은 오바마를 손짓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졌다.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인내(忍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내의 ‘인(忍)’은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본뜬 글자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칼날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참느냐 못 참느냐 거기서 지도자의 삶이 결판난다. 누사덕, 오바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참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데도 불구하고 막말이 쏟아져 내린다. 심지어 성직자라는 어느 분은 청와대 턱밑에 진을 치고 막무가내로 물러나라고 난리를 친다.

그럼 역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을까?

첫째, 인생의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둘째, 역경 없이는 반전도 없다.
셋째, 비전의 힘을 믿는다.
넷째,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 연리지 ‘소사나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가 ‘그냥 아름다운 나무는 없다’는 한 감상(感想)을 얻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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