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한일관계, 순국할 각오라도 서있는가?···‘도모지’에 얽힌 슬픈 사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순교(殉敎)는 어느 종교에서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며, 순교한 사람을 순교자(殉敎者)라 부른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나 그 종교의 교인에 의해서 성인(聖人)이라고 불리면서 존경받기도 한다. 천도교에서는 순도(殉道)라고 말한다.
예수교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구약의 선지자들, 예수의 12제자들, 그 외 사도(司徒)들을 순교자라고 한다. 한국역사에서는 불교 순교자인 이차돈(異次頓),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 천도교 탄압으로 순교한 천도교 신자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항거하여 순교한 개신교 신자들이 해당된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을 틀어막고 안으로는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여 엄청난 사람들을 죽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는 천주교 선교사 12명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당시 천주교인 8000명과 그를 돕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최소 2만명에서 최대 12만명까지 처형한 엄청난 사건이다.
황현(黃玹,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처형할 때, 마을 장정들로 하여금 마을 마당 한복판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범인을 묶어 꼼짝을 못하게끔 한다. 그러고서 물에 적신 창호지를 범인의 얼굴에 붙인다. 한 겹 두 겹 붙여나가면 숨을 쉬기가 차츰 차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했다.”
이때 얼굴에 붙이는 종이를 ‘도모지(塗貌紙)’라 했다. 천주교도들은 아무리 도모지를 얼굴에 붙여도 한 사람도 배교(背敎)를 한다거나 다른 천주교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입도 열지 않았다.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는 뜻의 ‘도무지’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데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도무지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한다. 도무지라는 말이 ‘순교를 각오한 결의’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고 나면 그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목숨을 걸고 해도 안 되는 일’이라면 ‘도무지’가 맞지만, 그 외에 조금 힘든 일을 가지고 ‘도무지’라고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마귀(魔鬼)들이 나를 향해 공격할 때 “도무지 안 넘어간다”며 포기하고 달아나는 역사(役事)가 일어나야 할 것이 아닌지? 그러니 ‘도무지’라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아니라 마귀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다.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천주교 박해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병인박해’는 정치·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서양 세력에 대한 대항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박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된 러시아가 자주 두만강을 건너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선의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다. 이때 일부 천주교도들이 흥선 대원군에게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며, 조선에 와 있는 프랑스 주교 베르뇌와의 면담을 건의하였다.
이들은 조약이 맺어지면 포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청(淸)나라에서 천주교를 탄압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국내에서도 천주교를 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자,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 탄압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자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고, 서양 세력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됐다.
그럼 원불교의 순교관(殉敎觀) 무엇일까?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대각(大覺)을 이룬 후 표준제자 9인과 함께 창생(蒼生)을 구원할 서원을 세워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결과 백지에 혈인(血印)이 나타났다. 소태산 부처님은 “기도의 정성에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감응한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는 법문을 내린 것을 ‘법인성사(法認聖事)’라고 하고, 이날 8월 21일을 법인절(法認節)이라고 부르며, 원불교 4대경절(四大慶節)의 하나로 모신다.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이 ‘법인성사’를 마치고 구인선진들에게 이런 순교관을 내렸다.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千辛萬苦)와 함지사지(陷地死地)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라. 그리고 가정 애착과 오욕(五欲)의 경계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한다면 거기에 끌리지 아니 할 것인 즉,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그러면서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며 “그대들의 전날의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죽었다”고 했다. 이렇게 원불교의 순교관은 ‘사무여한(死無餘限)의 정신’이다.
원불교에서 순교의 정신은 다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고, 다시 거듭나서 그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거듭나야 한다. 진리의 본질을 향해서 끊임없이 깨어나고, 끊임없이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우리 인류는 2억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역사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치의 히틀러가 유태인, 장애인, 동성애자, 정치범들을 1100만명을 죽였다.
소련의 스탈린이 2000만명, 캄보디아의 폴포트는 인구 800만명 가운데 250만명을 죽였다. 집단 광분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들고 무수한 사람들을 살생했다. 적어도 종교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역시 종교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屠戮)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