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고령화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노부부의 지독한 사랑은 어느 것도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선… 

‘부부각산’·졸혼·황혼이혼 중 최적의 백년해로 비결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미국에서는 중장년 커플들이 ‘따로 함께 살기’가 유행이라 한다. 우리는 이를 ‘부부각산(夫婦各産)’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부부간에도 서로 간섭 안 해서 더욱 행복하다고 하니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瑤池鏡)이다.

한국의 현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의 경제침략’을 제외해 놓고는 아마 인구문제라 할 것이다. 통계청이 7월26일 발표한 ‘2019년 4월 인구동향’을 보면 올해 4월 출생아 수는 26,100명, 사망자는 23,900명이고 혼인은 2만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혼 건수가 9,500건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이혼이 문제인 셈이다. ‘결혼생활의 지속’ 아니면 ‘이혼’이던 구조에서 선진국 형 부부생활의 비결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못된 풍속이긴 하지만 이걸 일본에서는 ‘졸혼(卒婚)’이라고 한다. 졸혼은 ‘황혼이혼(黃昏離婚)’의 대안으로 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걸 말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따로 함께 산다’는 뜻에서 ‘LAT(Living Apart Together)’가 유행이다.

7월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결혼하지 않은 중·장년 커플이, 같은 상황의 젊은 커플보다 더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 비결 중 하나로 LAT 생활방식을 꼽았다. 미국인구학회가 작년 위스콘신 주의 50세 이상 7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가 결혼하지 않았지만 교제 중인 파트너가 있다고 한다.

비혼(非婚) 교제족 중 39%가 LAT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교제 상대가 있는 사람 중 단순히 데이트만 하는 커플(31%)이나 동거하는 커플(30%)보다 더 많았다. ‘부부각산’이 졸혼이나 황혼이혼 보다는 났다는 것이다.

졸혼은 ‘혼인(婚姻)을 졸업(卒)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결혼 형태인 것이다. 이 말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이라는 책을 내면서 알려졌다.

졸혼은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황혼이혼과는 차이가 있다. 황혼이혼은 1990년대 초반에 생긴 신조어로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유지한 50대 이상의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에 만성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대학진학이나 독립 등을 계기로 발생한다.

그러나 졸혼상태의 부부는 혼인관계를 지속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다르다. 별거하는 부부도 있으나 대개 정기적으로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부부 사이에 불화로 인해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자녀를 키우면서 누리지 못한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졸혼은 혼인이라는 틀을 깨지 않고도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점에서 황혼이혼과 다르다. 그래서 자녀들이 독립한 후 결혼의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졸혼을 선택하는 부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졸혼 현상은 늘어난 기대수명과도 관련이 있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과거보다 결혼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정기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1.93세에서 2014년 82.40세로 44년간 20년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기나 긴 세월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도 모자랄 판에 졸혼이나 황혼이온이 무어라는 말인가?

불교의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에서 말하는 부부간은 7천겁의 인연이라고 했다. 그러나 항상 부부간의 인연이라도, 선연(善緣)만은 아니고 악연(惡緣)일 수도 있다. 그럼 부부간이라도 상생의 선연으로 여생을 행복하게 사는 ‘백년해로의 비결(秘訣)’은 없을까?

첫째, 선연 부부간 영원히 잘 사는 비결이다.
① 서로 오래 갈수록 공경 심을 놓지 말 것이요
② 서로 가까운 두 사이부터 신용을 잃지 말 것이요
③ 서로 근검하여 자력을 세워 놓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신조(信條)만 잘 지켜 나가면 평생에 잘 사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둘째, 악연부부의 무심비결이다.
한 교도가 부부간에 불화하여 내생에는 또 다시 인연 있는 사이가 되지 아니하리라 하며 늘 그 남편을 미워하거늘, 소태산 부처님 말씀하기를 “그 남편과 다시 인연을 맺지 아니하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無心)으로 대하라”고 했다.

셋째, 부부각산의 비결이다.
앞으로 오는 세상에는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책임을 우선 강조하게 된다. 남녀에게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주고, 의무와 책임도 같이 지게하며, 지위와 권리도 같이 주어서 피차에 의뢰심을 철폐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력을 양성하여 여자는 남자가 아니라도 살만 하고, 남자는 여자가 아니라도 살만한 힘을 얻도록 하는 ‘부부 各産 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부부가 각자 직장을 갖고, 독립된 생활 형태를 가지며, 문패도 따로 달고, 자녀 교육도 양육비를 똑같이 부담하며, 탁아소가 설립되어 아이를 키워주고 보살펴 주어 여성들의 사회 활동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러한 ‘백년해로의 비결’을 잘 지켜 인구도 늘고, 졸혼이나 황혼이혼의 비극을 없이하고 완전하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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