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동우와 헬렌 켈러의 ‘내 생애 최고의 날’

이동우씨 가족 <사진 여성조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내 생애 최고의 날은 언제였을까? 아마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마침내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한 날이었을 것이다. 팔십 평생 뒤돌아보면 한마디로 영욕(榮辱)이 점철(點綴)된 생애(生涯)였다.

당나라 시대에 운문문언(雲門文偃 : 864~949) 선사가 있었다. 어느 날, 운문 선사는 많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15일 이전의 일은 그만두더라도 지금부터 15일 이후의 마음에 대해서 한마디 해보거라.”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서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운문은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매일 매일이 좋은 날들이다). 이 말은 15일이라는 기간을 말한 것이 아니고 아마 지금, 이 순간을 얘기한 것 같다. 무상이 신속(無常迅速)한데, 어느 하가(何暇)에 15일 후의 마음에 점을 찍을 수 있겠는가?

매일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삼가면 그 하루하루는 날마다 좋은 날일 수밖에 없다. 과연 내일이라는 때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의 연장이 내일이고 오늘이 지난 때가 어제다. 따라서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날마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간 만만치 않다. 비 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바람 불고 태풍 몰아치는 날도 있다. 좋은 날이 있는가 하면 궂은 날도 있다. 그러나 그날그날 일어나는 좋고 나쁜 여러 사건들도 그날 하루는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루다. 돌이킬 수 없는 한 순간이다. 그날 하루에 몸과 마음을 던져서 산다면 그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아닐까?

운문 선사가 말한 ‘일일시호일’은 분별과 집착을 내려놓은 편안하고 맑은 경지를 나타낸 것 같다. 기쁠 때에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며,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며, 화날 때는 화를 낸다. 이렇게 마음에 집착하거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매일 매일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일깨워주는 잡지로 알려진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 수필로 꼽았던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본다면’(Three days to see)은 이렇게 요약된다.

헬렌 켈러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날은 나를 가르쳐 주신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뵙겠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과 풀과 빛나는 저녁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도 보겠습니다. 셋째 날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낮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유럽을 제패한 황제 나폴레옹은 죽을 때 “내 생애에서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눈이 멀어 볼 수 없었고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던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나폴레옹이 더 행복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행복의 척도는 생각하고 느끼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개그맨 이동우씨는 2003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무렵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주변의 시야가 차츰 좁아져 정상인 시력의 5%밖에 볼 수 없게 되는 병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시간이 자신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때, 이동우씨 사연을 들은 어느 40대남성이 눈을 기증하겠다고 전해왔다. 이씨는 기쁜 마음으로 그 남성이 산다는 천안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눈을 기증 받지 않고 돌아오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그냥 돌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동우씨는 “이미 눈을 기증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눈을 기증하겠다는 그분은 ‘근육병 환자’였다. 게다가 사지(四肢)도 못 쓰는, 오직 성한 곳이라곤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동우씨는 “나는 하나를 잃었지만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마저 저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한 개를 가지면 두 개를 가지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인데, 이동우씨 마음은 달랐다. 혹독하게 짓누르는 시련에도 삶은 계속되고 희망은 싹트기 마련인지, 이들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예쁜 딸이 생겼다.

이동우님은 아내와 딸과 나누는 큰 사랑으로 가슴 시린 아픔도 절망도 잘 이겨냈다. 특히 그는 아내를 통해 참된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침에 눈 떴다는 사실에,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음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음에, 아직도 남과 나눌 것이 남아 있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음에, 나를 아껴 주는 소중한 가족이 있음에, 따뜻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하루하루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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