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서 ‘진리’를 깨우치는 5가지 길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대도간이(大道簡易)라는 법문(法門)이 있다. 큰 도(道)는 쉽고 간단하다는 얘기다. 그 큰 도를 깨치기 위하여 불교에서는 팔만장경(八萬藏經)을 다 보아야 하고, 모든 조사의 어록 등의 법문을 다 읽어야만 도를 깨칠 수 있다고 했다.

필자 역시 원불교에 귀의한 그날부터 <원불교 전서>를 303번 읽었다. 매일 같이 한 품(品), 한 편(編)씩 읽기를 30여년을 해왔다. 이제는 눈이 아파 더 읽지를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입교한 그날부터 35년간 법회를 한번도 빠져본 일이 없다. 심지어 외국여행 중에도 비행기를 타고 원불교 교당(敎堂)으로 달려가 법회를 보았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도는 곧 진리다. 그런데 예로부터 천하 사람들이 모두 도를 어렵다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도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도란 길을 이름이다. 세상에는 큰 길, 작은 길이 있다.

그동안 내가 닦아온 공부법은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과<원불교 전서>를 읽은 것은 마치 무쇠를 달군 뒤 망치로 쳐서 잡철을 떨어내어 정금미옥(精金美玉)을 만들듯이, 진리를 고작 한 두어 마디로 그 핵심[綱領]을 잡아 실행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대종경>(大宗經) ‘성리품’(性理品) 8장에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솔성(率性)이라 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소유인 것을 알았으나 전일에 잃어버리고 지내는 동안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바 되었는지라, 여러모로 주선하여 그 잃었던 권리를 회복함과 같나니라” 하셨다.

그러니까 ‘견성’은 잃었던 재산이 자기 물건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솔성’은 그 재산을 찾고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고, ‘양성’은 그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다. 가령, 돈 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내 것인 줄을 알면 견성이요, 쓰기 편하게 단위 별로 백원짜리, 1000원짜리를 따로 정리하는 것은 양성이며, 물가대로 돈을 주고 물건을 잘 사는 것이 솔성이다.

이렇게 대도는 간단명료하다. 평생을 걸려 8만대장경을 다 읽을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깨달아, 누구든지 행할 수 있는 대도 간이한 법, 그것이 바로 <원불교 전서>다. 간단명료한 <원불교 교리도>를 보면 누구나 큰 도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럼 그 간단한 진리를 깨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째,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 큰 의심을 품는 것이다. 큰 믿음 아래 큰 의심이 생긴다. 일심이 이르는 곳에 금석(金石)도 뚫리는 것이다.

둘째,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간절히 구하는 이에게 돌아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소태산 부처님도 간절히 구하셨기 때문에 우주와 인생의 큰 진리를 깨치신 것이다.

셋째, 의심을 오래오래 궁굴리는 것이다. 의심을 깨치는 데는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에 따라 연마하는 것이 더 우월하다.

넷째, 연구는 순서에 따라 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 의심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쓴다.

다섯째, 생활 속에서 산 경전을 발견하는 것이다. 희비애락과 우여곡절의 경험을 통한 가운데 큰 깨달음이 생기는 것이다.

법은 사정(私情)으로 주고받지 못한다. 이생에 태어나 대도를 깨달아 올바른 길을 가고,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制度)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대장부의 일생 사를 마쳤다 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원(願)은 대도를 깨달아 성불(成佛)하고 제중(濟衆)하여 대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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