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굴기 자오웨이궈, 시진핑 배출한 칭화대 교훈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자오웨이궈 칭화유니 회장(가운데). 이들은 칭화대 동문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중국청화대의 교훈(校訓)이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彊不息 厚德載物)이라고 한다. ‘자강불식 후덕재물’이라는 글은 <주역>(周易) 대상전(大象傳)에 나오는 괘(卦)의 하나다.

주역 건괘(乾卦)의 “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以하여 自强不息하나니라” 뜻을 풀이해 보면 이렇다. “이 괘상(卦象)은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올바르게 함으로 이롭다 할 것이다. 물질보다는 정신적으로 길(吉)하다. 인내로써 꾸준히 나아가라. 흥망성쇠의 변혁기이다. 물질보다는 정신쪽에 가깝다. 모든 일이 급진(急進)은 불가(不可)하고 부단한 노력과 인내로써 꾸준히 나아감이 좋다.”

또 곤괘(坤卦)에는 “象曰 地勢坤이니 君子以하여 厚德으로 載物하나니라”가 있다. 뜻을 풀이 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괘는 유순(柔順)히 뒤를 따라가라. 노고(勞苦)하는 일 있고, 재산의 손실도 있지만, 뒤에 큰 번영이 있어 흉(凶)한 일이 아니다. 독주(獨走)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라. 곤(坤)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고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이니, 유순한 암말처럼 주인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고 얻는 바 있다.”

이 점괘(占卦) 괜찮으신지? 그러나 필자는 점괘도 좋지만 그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어디 그 해석을 한번 살펴보자. ‘자강불식 후덕재물’은 해와 달의 굳건한 운행을 본받아 스스로 힘씀에 쉼이 없으며, 두터운 땅이 자애롭게 만물을 싣고 기르듯 덕행을 쌓아 관대하라는 뜻이다.

즉 우리의 조상과 옛 어른들은 천행(天行)을 살피고 그 굳건함을 본받아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강하여 지고, 지세(地勢)를 살펴 만물을 싣고 생장시킴을 본받아 덕행을 쌓고 관대하고자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 주역에는 하늘과 땅, 양(陽)과 음(陰)의 근본사상이 담겨있다. 자신을 규제할 때는 양의 강함으로 철저히 하고, 남을 대함에는 음의 부드러움으로 포용한다는 사상이 담겨져 있다.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하여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즉, 날마다 쉬지 않고 매일 같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의 원리다. 이 씩씩한 하늘의 원리와 후덕한 땅의 원리를 본받으며 사는 것이 위대한 인간, 군자(君子)의 삶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허지강은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닌 어린 시절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하지만 입으로 붓을 잡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 장애의 유무를 막론하고 중국을 대표하는 서예가가 됐다.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모두들 기적을 바란다.

신앙이 있는 분들도 그런 상황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쉽다. 하지만 진정 자강불식을 다하는 사람에겐 불평과 불만을 쏟아낼 시간조차 없다. 스스로 움직여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강불식 후덕재물’의 자세를 가지면 우리는 분명 강자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필자는 권투계라는 험한 세상에 살다가 30여년 전 일원대도(一圓大道)에 입문을 하였다. 감히 도가 무엇인지 인과(因果)가 무엇인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내겐 경이(驚異)의 세계였다. 한 쪽은 빼앗지 않으면 죽는 세계, 또 한 쪽은 주고 또 주어 서로 살리는 상생(相生)의 세계. 너무 힘들고 풍토가 달라 도로 뛰쳐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 험난한 길을 달려가야 할 것인가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누구는 중생으로 불리고 누구는 불보살이 되어 만 생령(萬生靈)의 추앙을 받는다는 말인가? 마침내 필자는 험난한 세계로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30여년,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직심으로 달려왔다. 말 못할 유혹과 난관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마침내 세상이 부러워하는 행복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필자가 아직 마음자유, 생사초월, 죄·복을 임의할 경지에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로는 원하면 원하는 경지에는 가까이 온 것 같다. 우리들의 세계 덕화만발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강불식 후덕재물’의 소산(所産)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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