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유해 도난사건과 장례문화 이대로 좋은가?

인도 동부 부바네스와르주도에 세워져있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동상. <사진=신화사>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10월 5일자 조선일보에 ‘탄생 150주년에 ‘반역자’ 수모···인도國父 간디 유해 도난당해‘라는 기사가 올라 있다. 2019년 10월 2일은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가 탄생한 지 150년 되는 날이다.

그런데 이 뜻 깊은 날에 인도 간디기념관에서 간디의 유해 일부가 도난당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이날 기념관에 참배하러 왔던 지방의회 의원 등이 유골이 사라진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해서 알게 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기념관에 걸린 간디의 사진도 초록색 페인트로 훼손됐고, 힌디어로 ‘반역자’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간디는 대부분의 인도인에게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지만,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합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일부 힌두교 강경파에게는 ‘배신자’로 통한다고 BBC는 전했다.

간디는 생전 독실한 힌두교도였지만 힌두교 외의 종교인들과도 교류하는 등 종교간 화합에 힘썼다. 그는 기독교의 ‘산상수훈’을 읽고 “왜 기독교를 최고의 종교라고 하는지를 알겠다”고 극찬한 바 있다. 간디박물관 정문에는 “진리는 신이다”라고 쓰여 있다.

간디는 진리적 종교인 힌두교와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교의 접목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포용성이 반이슬람 힌두교 급진주의 무장단체의 원한을 불러 79세 나이로 살해되었다. 사후 간디의 시신은 힌두교 장례풍습에 따라 화장됐지만, 뼛가루가 강에 뿌려지지는 않았고 이번에 도난당한 곳을 포함해 인도 여러 곳의 간디기념관 등에 보내졌다.

필자도 아주 오래 전, 익산 왕궁에 있는 ‘원불교 공원묘지’에 우리 부부가 들어갈 묘지(墓地) 2기를 사둔 적이 있다. 그리고 서울 인근 월롱역 부근의 우리 선산김씨 선산(先山)에 아주 멋진 가족묘지에도 우리 부부가 들어갈 묘 터도 있다.

그런데 이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진 유골에 무슨 영식(靈息)이 남아있다고 그 아름다운 묘지를 더럽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나 자신도 다리가 쇠약해져 부모님 묘지에 성묘(省墓)도 못가는 형편이다. 또 두 딸애가 큰애는 뉴욕에, 작은 애는 광주에 출가한 몸이니 어느 하가(何暇)에 우리가 죽은 다음 애들이 묘소에 참배를 오겠는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예 우리 부부가 죽은 다음 화장(火葬)을 해서 선산에 그냥 뿌리라고 자식들과 종친회에 유언(遺言)을 해두었다. 정산(鼎山) 종사께서 <법어>(法語) ‘예도편’(禮道編)에 이런 법문(法門)을 하셨다.

“화장이 우선 보기에는 좀 박절한 것 같으나 영식이 이미 없고 토석으로 화한 백골에 매장과 화장이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불교의 해석에는 사람의 육체는 이 업(業)의 결합된 바라 하였으니, 영(靈)을 위하여서는 화장하는 것이 도리어 유익하다. 보통 식물도 살아 있는 때에는 땅의 정기(精氣)를 받으나 말라 죽은 이상에는 땅의 정기를 받지 못하거늘, 생기(生氣)가 이미 떠나서 토석으로 화한 백골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위대한 간디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유해의 처리가 문제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다. 생전의 간디는 위대했다. 그래서 그의 행적을 기리고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토석으로 화한 백골에는 영식이 없다.

어쩌면 인도 장례풍습에 따라 간디의 유해(遺骸)를 갠지스강에 뿌려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 백골을 인도 여러 곳의 간디기념관 등에 보내서 이런 도난의 소지를 만든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이번 사태는 유해를 도난을 당한 인도인뿐 아니라, 그를 존경하는 세계인의 가슴이 메어질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무래도 간디의 뜻은 아니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잃을 게 없으면 잃을 일이 없다.

지금 묘지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혹 좋은 묘터를 미리 잡아놓고 거기에 자기가 묻히리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러한 사람은 명을 마치는 찰나에 영식이 바로 그 터로 가게 되어 그 주위에 인도 수생의 길이 없으면, 부지중 악도에 떨어져서 사람 몸을 받기가 어렵게 된다. 어찌 조심할 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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