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이브 몽탕의 ‘고엽’ 함께 부르지 않으렵니까?

edith_piaf_914-6440
1962년 에디트 피아프
jean_cocteau_b_meurisse_1923
장 모리스 외젠 클레망 콕토(Jean Maurice Eug?ne Cl?ment Cocteau, 1889년 7월 5일 ~ 1963년 10월 11일)
yves_montand_cannes
Ivo Livi (or Ivo Levi) (13 October 1921 ? 9 November 1991), better known as Yves Montand, was an Italian-French actor and singer.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경찰청 수사국장] 이 가을 낯 익은 목소리가 어느 가게에선가 길가 쪽에 단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잊고 산지 오래 된 이브 몽탕의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 노래다. 고엽은 시든 잎 또는 마른 잎을 말한다. 때론 낙엽이기도 한 그런 나뭇잎을 말한다.

이브 몽탕의 그 노래는 제목이 서글픔부터 안겨준다. 옛날 청춘시대에 가을 되면 심각하게 겉멋으로 흥얼거렸다. 누군들 안 그랬겠는가?

이탈리아인 몽탕은 궁핍했고 무솔리니가 싫었다. 그래서인가, 프랑스로 스며들었다. 짐꾼, 조선 노무자 그리고 미용사로 밥벌이 하면서 밤무대에서 노래 불렀다. 그러다 ‘참새’ 에디트 피아프 눈에 띄어 성공의 문턱에 들어섰다.

‘枯葉’ 노래는 이브 몽탕이 영화 속에서 처음 불러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영어로 ‘Autumn Leaves’로 불리며 히트했다. 나는 흑인가수 냇 킹 콜이 부른 게 좋다.

이브 몽탕은 노동자 출신이어서인지 노동자 계층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영국인 평론가는 그를 전기공 같다고 했다. 나중에 손 털었지만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나는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지/ 기분 전환 위해 돈 쓸 순 없어/ 그래서 무료이면서 즐겨 하는 오락거리가 있어/ 난 대로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거기엔 희망의 날도,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분노의 날도 있지.”

몽탕이 부른 이 노래를 나는 특히 좋아한다. “Barbara(바바라) 기억하니/ 그날 브레스트엔 비가 오고 있었지/ 넌 내리는 빗물 속에서 미소 띤 채/ 환하게 눈부시게 비에 젖은 채 걷고 있었지/ 브레스트엔 비가 내리고 있었어.”

몽탕은 파리에서 에디트 피아프와 공연을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피아프는 몽탕에게 무대와 공연과 노래에 대하여 비법을 전수해줬다. 개인 지도다.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은 피아프가 몽탕과의 사랑을 단 15분 만에 작곡한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리메이크한 명곡 중 명곡이다.

에디트 피아프(?dith Piaf)는 파리의 길거리 가수 엄마와 길거리 곡예사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다. 엄나가 길가에서 노래하다 그녀를 낳았다.

피아프는 어린 나이에 사람 모이는 거리나 장터에서 노래했다. 스무살 때 카바레 사장이 발견했다. 142cm 그녀에게 라 몸 피아프(La M?me Piaf, 어린 참새)란 이름을 선사하고 무대에 세웠다.

의상 살 돈이 없어 검은 옷을 입고 출연했다. 피아프의 상징이 된 그 검은 옷이다. 샹송 얘기한다면 피아프 없이 얘기 안 된다. 파란만장한 프랑스의 전설이 됐다.

피아프의 샹송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명쾌하고 쉽다. 하늘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장밋빛 인생에도 하늘이 빠지지 않았다. 대표작의 하나인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역시 마찬가지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에 무너져 내려앉을지 모르고,/ 대지가 허물어질지 모른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장 콕토는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다. 1936년 4월 피아프가 ABC뮤직홀에서 첫 공연 하던 날 객석에 있었다. 이튿날 <르 피가로>지가 콕토의 평론을 실었다. “에디트 피아프는 재능이 넘친다. 그녀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여가수다. 피아프 이전에 피아프 없었고. 피아프 이후에도 피아프는 없을 것이다.” 극찬이었다. 콕토와 피아프는 평생 우정을 나눴다.

1963년 10월11일 피아프가 47세로 운명했다. 심근경색으로 요양 중이던. 콕토는 부고를 듣고 졸도했다. 바로 그날 1963년 10월11일 장 콕토도 작고했다. 74세! 47이 뒤바뀐 74 나이에.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