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악당교본②] 살인마 공무원 “나도 사람고기 즐긴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1983년 2월 8일. 38세의 공무원 데니스 닐슨(Dennis Nilsen). 퇴근길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사 셋과 마주쳤다. 하수구의 사람 살점 때문이라 직감한 그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는 듯 “슬프고도 무서운 일”이라고 운을 뗐다.
수사반장은 즉각 받아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머지 부분 어디 있어?” 닐슨은 엉겁결에 대답하고 만다. “옷장에 있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시체 조각이 비닐 가방 두개에 가득 들어 있었다. 주방 냄비 속에도 살점이 있었다. 피해자의 인육으로 스튜나 카레를 만들고 찜으로도 먹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전직 경찰관-현직 공무원
1972년. 군에서 12년을 보낸 스코틀랜드 출신 27세 청년. 런던경찰 신임순경 모집에 합격했다.
경찰학교 졸업 후 순찰경관이 됐다. 비번 때는 동성애자 술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군말 없이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여가시간이 적고 규율도 엄격한 경찰생활을 1년만에 접었다. 1973년 직업안정소에 취직했다. 공무원 신분이다.
열다섯에 입대한 육군에서 동성애에 눈 떴다. 1975년에는 길거리 폭력으로 곤경에 처한 노숙자 트윙클(Twinkle)을 도와주게 되고 동거하게 됐다.
그러나 둘 사이엔 공통점이 없었다. 자연스레 틈이 생겼다. 방도 따로 쓰게 됐다. 트윙클을 내보냈다. 간간이 게이클럽에 가서 욕구를 풀었다. 친구가 없는 닐슨에게는 유일한 바깥 세계와의 교류였다.
1978년 12월. 크리스마스 연휴 엿새를 내내 혼자 지냈다. 고독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나 홀로라는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12월 30일. 단골 게이바로 갔다. 그곳에서 꿈속에서 내내 그려왔던 이상형의 소년을 만났다. 함께 집으로 왔다.
다음날. 12월 31일 새벽. 평화롭게 자는 소년의 얼굴을 보자 불안이 엄습했다.
죽이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다
날 밝으면 떠날 소년. 다시 마주칠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새해 첫날만이라도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갖은 생각 끝에 죽은 자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소년의 목을 넥타이로 졸랐다. 첫 살인. 시신을 욕실로 옮겼다. 몸을 깨끗이 씻기고 머리를 감겼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밤에는 꼭 껴안고 잠잤다.
1979년 1월 1일. 새해가 됐다. 죽은 연인에게 새 속옷을 입히고 새 양말도 신겼다. 새 겉옷도 입혔다. 밤에는 애무를 한 다음 삽입을 시도했다. 시체가 너무 차가워 실패했다.
1월 2일. 마루 밑에 시체를 숨기려 했다. 사후경직이 일어나 실패했다. 이튿날 경직이 풀렸다. 마루 밑에 넣었다.
1월 10일. 시체를 꺼내 목욕시켰다. 침대에 뉘였다. 자위. 시체 위에 사정했다.
1월 11일.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이를 보면서 자위, 사정. 마루 밑에 다시 숨겼다. 8월 11일. 그 동안 모아둔 시체를 꺼내 불에 태웠다.
시체와 섹스
시간(necrophilia, 屍姦)을 즐겼다. 그러기 위해서 동성애 상대방을 죽였다. 잘 안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시체 옆에서 시체와 대화하며 자위하고 사정했다. 그런 다음 시체를 토막 냈다. 살을 발라냈다.
1980년 12월. 또 숨겨둔 시체를 마당에서 태웠다. 동네 아이들이 구경 와도 개의치 않았다.
5년에 걸친 열다섯 번의 살인. 잇달아 성공했다. 발각과 체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자만한 탓인가. 열여섯 번 째 피해자의 도려낸 살과 뼈를 하수구에 너무 많이 버렸다. 막혀 버렸다.
수리하던 배관공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 연쇄살인은 종신형으로 끝을 맺었다.
피해자는 마약 또는 알코올에 중독된 노숙자나 탈영병이었다. 사회가 버린 사람이었다. 무전 여행자도 있었다. 술 먹이고 즐긴 다음 잠들면 교살하거나 익사시켰다.
강아지를 사랑했다는데 태연히 이런 일을 저질렀다. 구차하게 연명하는 그들의 짐을 덜어준 자비였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