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을까?
[아시아엔=이홍주 공연프로듀서, MBC프로덕션 전 제작사업실장, SBS콘텐츠허브 전 상무, CJ E&M 음악사업부문 경영총괄 역임] ‘에비타’(EVITA). 한때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추앙받던 ‘에바 페론’의 별칭이다. 1952년 어느 영화관에서 갑자기 영화상영이 중단되고 ‘에바 페론’의 죽음이 발표된다. 국민들은 모두 한없는 눈물을 흘린다.
15세 때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상경. 하지만 멀어져가는 배우의 꿈, 그리고 이내 클럽댄서로 일하게 되고, 성공하기 위해 남자들을 자신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결국 모델·배우·성우를 거쳐 방송으로 진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했고, 그 사이에 후안 페론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페론은 유명인사 초청 기금모금 이벤트를 연다. 그때 두 사람이 만나 곧바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얼마 뒤 시위 노동자 석방이 집권세력으로 하여금 난국을 풀어가는 열쇠였다. 이때 에바의 라디오 연설이 전국민의 호응을 받는다. 후안 페론은 풀려나 둘은 결혼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에바는 26살 나이에 영부인에 오른다. 에바 페론 그녀는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재단설립과 여성인권신장을 위한 사회운동에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복지노동성 장관에 취임한다.
‘거룩한 악녀, 천박한 성녀’. 에바 페론에 붙은 닉네임은 극과 극을 달렸다. 그녀는 건강악화로 쓰러지고 국민 앞에서 노래로 마지막 연설을 한다. 이 노래가 바로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다. 국민들의 추모열기 속에서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33세 젊은 나이로.
작사가 팀 라이스 경,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경, 두 천재는 의기투합하여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고 이후 영화로도 제작된다.
뒷 얘기, 20년 동안 영화제작을 위해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언제나 에바 페론 배역 1순위는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역은 마돈나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 화려한 삶을 사는데 크리스찬 디오르 같은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옷과 구두·장신구·보석 등을 가장 먼저 착용하는 호사를 누렸다.
후안 페론 정부는 초기에는 경제성장률도 좋고 임금상승률도 좋았다. 하지만 곧이어 우리나라의 IMF처럼 아르헨티나의 정부예산 특히 세금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책들을 추진했고 결국 그의 집권 후반기 아르헨티나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물론 미국 CIA가 개입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지만….
에바 페론 사후, 미국은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녀의 시체를 이탈리아에 16년이나 숨긴다. 후안 페론이 재집권하고 그녀의 시신도 귀국했으나 후안이 1년 만에 죽고, 다시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다. 결국 그녀의 시신은 평범한 가족묘지에 묻힌다.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한국의 에바 페론’, 지금 그녀는 국민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언젠가 그녀도 한줌의 재로 돌아갈 텐데 국민들은 그녀가 대통령이었다는 흔적이 국립현충원에 남겨지기를 바라게 될까? 그리고 누가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