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공원 5만명 앞 ‘열애’ 윤시내가 촛불 태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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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홍주 대중문화평론가] 예전의 대전 ‘보문산공원’을 기억한다. 당시 MBC에서는 주요 지방도시를 순회하는 대형 음악프로그램을 제작·방송했는데 중간 중간 지역 명물 소개도 담았다.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인가가수들이 펼쳐내는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일요일 봄날의 대전 보문산공원. 어렴풋하지만 구창모, 이은하, 최성수, 강병철과 삼태기, 현철, 윤시내, 전영록 등 10대가수급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화려한 공연이 준비되었다. 그런데 대전시민이 너무 많이, 많아도 너무 많이 오신 것이다. 대전MBC의 담당국장은 경찰담당자에게 계속 안전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객석정리가 안 돼 카메라 리허설은커녕 음악연습도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최대 2만명을 예상했는데 5만명이 모이는 흥행대박이었다. 자동차가 못 들어와 가수들도 20분 정도 언덕길을 걸러 올라왔을 정도다. 안전사고의 위험으로 인해 공연의 개최여부는 점점 불분명해졌다. 당시 프로그램의 총괄 프로듀서는 대한민국 음악 PD 1호 ‘차재영’ 제작위원이었다. 그는 노련한 경험을 갖고 무대총괄감독으로 3시간 가까이 객석정리를 잘 마감하고, 결국 리허설 없이 본방 녹화에 들어가게 된다.

녹화는 순로롭게 진행되었다. 관객 모두 스스로 안전을 위해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가수들은 2곡씩 불렀는데 그 중 한곡만 방송에 내보냈다.

그런데 마지막 클로징 가수 윤시내가 느닷없는 돌출행동을 했다. 비교적 빠른 노래로 선곡을 했다. ‘그대에게서 벗아나고파’ ‘DJ에게’ 등. 그런데 윤시내가 예정에 없는 멘트를 했다. “제가 가수가 된 다음 오늘같이 기쁜 날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안전사고가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무사히 마지막 순서까지 오게 되어서 안심입니다. 대전 시민 여러분 정말 최곱니다. 그런데 예정에 없는 노래를 한곡 더해도 될까요? 이 노래만큼은 이 자리에서 꼭 부르고 싶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MBC 관현악단 단장님, 혹시 ‘열애’ 메모리로 가능할까요” 대한민국 최고수준의 악단은 이미 이 곡을 수십 번 연주했던 터라 쉽게 반주를 시작한다. 악보도 없이.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결국 프로그램의 엔딩곡이 ‘열애’였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고 대전 시민 모두의 선택이었다. 노래의 뒷부분에서 수많은 시민의 목소리가 하나 둘 모아졌고 그 시민의 소리들이 거대한 합창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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