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천재음악가는?①] 슈만, 19살 클라라 아내 삼으려 장인 상대 소송
[아시아엔=이홍주 대중문화평론가]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슈만…… 모두 대단한 음악가들입니다. 다소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누가 최고의 천재음악가였을까요. 음악은 커피 같은 기호식품이어서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좋아하는 방식도 조금씩은 다릅니다. 그리고 천재라는 의미도 조금씩은 그 종류가 다를 겁니다. 대입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도 천재 소리를 듣고, 뛰어난 발명을 한다든가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을 써도 역시 천재 소리를 듣습니다. 왜 그들에게 ‘천재’라는 단어가 연상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봅니다. 정답은 네사람 모두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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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독일 1810~1856)
가곡 시인의 사랑, 교향곡 봄, 교향곡 라인, 사육제, 어린이의 정경 등등이 그의 주요 작품입니다. 그런데 슈만은 여느 음악가와도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교양이 풍부하고 지식수준이 월등이 높았습니다. 슈만은 음악공부를 하기위해 당시 유명한 음악교수였던 비크 교수의 집에서 음악수업을 받게 되는데 비크 교수의 딸은 미모를 겸비한 인기정상의 초등학생 피아니스트였지요. 이름은 ‘클라라’였구요.
슈만은 9살 된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11년만에 드디어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음악가로서의 비전도 불분명한 슈만에게 비크 교수는 자신의 딸을 주기 싫었고 그런 슈만에게 ‘뚱뚱하고 미련한 곰탱이……’같은 의미의 독설도 자주 날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슈만은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예비장인과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바로 클라라와 결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내게 되고 몇 년 동안 법정다툼을 벌입니다. 결국 승소하고 당시 최고의 신부감 클라라를 아내로 맞이해 자녀를 6명이나 두면서 행복한 삶을 삽니다. 물론 인생의 후반부에는 병마와 우울증과 싸우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음악가가 소송이라니 무슨 얘긴가 하실 겁니다. 바로 슈만은 독일 최고의 명문대학 ‘라이프찌히’와 ‘하이델베르그’에서 법학을 전공한 수재였고 대학을 옮긴 것도 법학공부와 음악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하이델베르그대학 교수님 덕분이랍니다. 4명 중에서 아마도 수능성적은 1등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