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양희은②] 전인권 광화문서 열창 ‘상록수’의 자매곡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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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홍주 공연프로듀서, 전 MBC프로덕션 제작사업실장, CJ E&M 음악사업부문 경영총괄 역임] 1970년대 중반, 두 사람의 인생은 더욱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한 사람은 퍼스트레이디의 대행자로, 다른 한 사람은 ‘금지곡 인생’을 살게 된다. 그 대비는 아직도 존재한다. 양희은도 박근혜처럼 군인출신의 장교 아버지를 두었다. 부친은 6·25 한국전쟁에서 공로를 세우고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뜬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양희은은 일찍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양희은은 정말 대단한 금지곡 인생이었다. 아침이슬, 작은 연못,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늙은 군인의 노래 등등. 하지만 이 노래들은 박근혜의 부친 박정희가 숨진 지 8년이 지나서야 해금된다.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던 1987년 일이다.

금지곡 인생 양희은은 꾸준히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이어 간다. 즉 ‘비정치적’이고 ‘비판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노래로 대중들과 호흡한다. 한 사람, 내님의 사랑은, 한계령, 하얀 목련이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또한 서른살 즈음에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이란 난소암으로 큰 수술을 받고 아이를 직접 가질 수 없게 되는 여자로서의 아픔도 경험한다.

바로 이 당시 발표된 곡이 ‘한계령’이다. 그리고 라디오 DJ로서도 또다른 삶은 살게 되는데 문화방송 라디오 장수 프로그램인 ‘여성시대’를 17년 넘게 진행하면서 이 땅의 여성들에게 늘 당당한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97년 그녀의 노래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방송에 나왔다. 화면에는 박세리의 하얀 발목이 비쳐졌다. 바로 IMF 경제위기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최고의 위안을 선사했던 공익광고에서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2016년 11월 광화문에서 ‘아침이슬’이 다시 들렸다. 같은 노래지만 부르는 이가 달랐다. 전인권. 박자 음정이 약간 불안하게 들리는 노래였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크게 울려왔다. 청아한 음색 대신에 탁한 음색으로 들려왔지만 이번엔 수십만 시민들이 함께 불러도 좋은 노래가 되어 있었다.

엉뚱한 역사적 상황을 가정해본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40년 절친이 ‘최순득’이나 ‘최순실’이 아닌 ‘양희은’이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또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공학과가 아닌 사학과에 진학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물론 40여년 전 상황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런 가정이 거의 의미 없는 시절이었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 애창가요 1위 ‘아침이슬’은 노태우·이명박·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이었다. 또 1973년 문화공보처에 의해 건전가요로도 선정됐다. 바로 이듬해 독재에 저항하는 데모노래로 애창되면서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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