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 vs ‘사운드 어브 뮤직’ 줄리 앤드류스의 막판 운명은?
[아시아엔=이홍주 대중문화평론가] 스크린의 요정. 글래머스타들의 전성시대에 ‘오드리 헵번’이 나타난다. 1929년 벨기에 출신. 1953년작 <로마의 휴일>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다음해에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한때 긴머리 소녀들의 원성을 살 정도로 숏커트 유행을 몰고 다녔다. 영화 <수상한 그녀> 에서 중견배우 나문희도 닮고 싶어했던 미녀의 대명사. <티파니에서 아침을> <사브리나> 등에서 열연. 그리고 삶이 끝날때까지 봉사와 헌신으로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준 아름다운 천사.
다음으로 ‘줄리 앤드류스’. 1935년 영국출신,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도 당연 최고로 손꼽히는 아역 스타 뮤지컬 배우. 지구상에서 최다 공연횟수 기록을 갖고 있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20년전 목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후로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되는 치명적인 아픔을 겪었지만 그러나 목소리 연기는 가능하다면서 영화 <슈렉>에서 왕비 목소리로도 출연했었다. 그런데 두사람 사이엔 엄청난 인연이자 악연이 있었다.
1964년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포핀스>란 뮤지컬 영화로 대박을 친다. 그리고 196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그해 어떤 뮤지컬영화가 준비되고 있었는데 바로 <마이 페어 레이디>. 섭외 1순위 ‘줄리 앤드류스’ 섭외 2순위 ‘오드리 헵번’였다. 그런데 영화제작자의 고집으로 ‘연이어 대박 안난다’라는 확신에 따라 ‘오드리 헵번’으로 결정한다. 물론 영화는 대박을 쳤고. 그런데 다음 해? 1965년 <사운드 오브 뮤직> 제작이 공표되고 주연 캐스팅에서 이번엔 그 반대로 1순위 ‘오드리 헵번’ 2순위 ‘줄리 앤드류스’였다. 같은 논리로 ‘줄리 앤드류스’로 결정. 역시 대박을 친다.
두사람은 자신에게 먼저 캐스팅 된 작품을 상대방에게 뺐기는 아픔을 겪지만 두 작품 모두 대박이 났고 후세 사람들에게는 주인공이 바뀐 얘기조차 잊혀지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애기조차 잊혀지게 된 것일까? 작품과 캐스팅과 연기가 서로 최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과 곧 다가올 2017년. ‘오드리 헵번’과 ‘줄리 앤드류스’ 그들의 운명은 뒤바뀔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 들였고 또한 스스로 ‘운명의 변화’를 찾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