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께 ①] “40년 전 명일동 개척교회때가 그리우시죠?”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의 하나로 꼽히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담임목사 김삼환)가 김 목사의 정년에 따른 은퇴를 앞두고 후임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삼환 목사는 1980년 현재 위치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해 교세확장에 ‘대성공’을 이룬데다 세계기독교교회협희회(WCC) 창립 및 해외선교 등 수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연말로 예상되는 퇴임을 앞두고 김삼환 목사 후임에 아들(김하나 새노래명성교회 담임목사)을 포함해 과연 누가 잇게 될지 기독교계 안팎에 관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삼환 목사의 거취와 후임자 선정은 향후 기독교계 뿐 아니라 한국 종교계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엔>은 김삼환 목사와 아들 김하나 목사 그리고 명성교회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발행인 칼럼’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 하나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는 목사님께 존경의 인사를 올립니다. 일면식도 없이 불쑥 이렇게 공개글을 드림을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명성교회를 개척하신지 40년이 다 돼 갑니다. 저는 명일동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둔촌동이 고향이라 어려서부터 그곳을 종종 다녔었지요. 당시 명일동은 왕복 2차선 도로에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568번 버스가 5~6분 간격으로 콩나물시루처름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곤 했지요.
뒷산에는 봄이면 꿩들이 울어대고 겨울엔 물댄 논에서 스케이트장을 열곤 했지요. 당시 일대에는 길동교회 등 해방 이전부터 있던 제법 큰 교회당과 함께 건물 지하나 2, 3층에서 세를 내 예배를 드리던 개척교회가 여럿 있었지요.
목사님께서 명성교회를 여실 때 저는 당시 천호동의 삼광교회라는 교인 200명 남짓한 곳에서 대학부 학생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전에서야 명성교회에 대해 들었을 뿐 별 관심을 두지는 못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교회는 넘치는 사람보단 뭔가 부족하고 갈급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아마 목사님의 개척교회 역시 새벽기도회에 나와 눈물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을 비는 신도들로 가득 찼을 거라 상상이 됩니다. 목사님이나 저나 ‘아, 하나님은 바로 저런 사람들을 위해 이땅에 예수님을 보내셨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아드님 김하나 목사께 신앙의 뿌리를 심어주신 것도 바로 명성교회 개척시절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역경 속에서 비로소 튼실히 자리잡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후 40년 가까이 목사님께서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구신 명성교회는 어느덧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많은 이들은 목사님과 명성교회를 부러워합니다. 저 역시 목사님의 목회사역에 경이로움과 존경을 보냅니다.
그런데, 최근 명성교회에 청빙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우리 교회 내부는 물론 세간에서 목사님께서 교회를 아들인 김하나 목사에게 물려주실 거라는 예단과 함께 여러 얘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큰 관심사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고요.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목사님 도움으로 경기도 하남에서 새노래명성교회를 잘 일구고 발전시킨 아드님에게 명성교회를 넘기시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목사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승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셨고, 하나님 뜻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아드님 역시 하남의 제법 큰 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다는 평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명성교회와 달리 한두칸 방에서 서너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 가출한 중학생 자녀가 언제난 돌아올까 노심초사 새벽마다 기도하며 눈물 뿌리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참목회를 하는 아드님께 명성교회를 승계시키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김하나 목사는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께서 명성교회 개척하던 그 일의 상당 부분을 지금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하나 목사가 무척 행복하고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
언젠가 교회 목사님들이 신도들과 골프를 나간다는 언론보도를 봤습니다. 특히 변호사, 기업인 등 우리사회 최상류층이 몰려 있는 강남의 대형교회들 목사님들에겐 흔히 있는 일이라더군요. 어느 목사님은 “교인들 유치하려면 골프가 최고”라고 하고 어떤 목사님은 “아무개 장로가 목사님 수고하시는데 골프라도 모시겠습니다” 하여 골프장에 나간다고도 하더군요.
목사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신지요? 물론 목사님들이 골프를 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사업실패로 시련을 겪고 있는 기업인을 골프장으로 불러 위로하는 것, 선거에 낙선해 실의에 빠진 정치인과 골프를 치며 희망을 불어넣어주면 참 좋겠지요. 하지만 골프 접대를 받거나, 골프 선교를 일삼는 일부 목사님들을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아마 김삼환 목사님과 명성교회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평이 그다지 믿기지 않으며 한편으론 아쉽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가 듣고 그러리라 생각하는 명성교회에 대한 평가를 적어보겠습니다. “5만명 이상의 교인. 이 가운데 정치인, 교수, 법조인, 기업인, 관계 인사 등 우리사회에서 0.1% 안에 드는 내로라 하는 신도들이 즐비한 교회. 이곳에 등록교인이 되지 않고선 이 일대에서 영업하기는 쉽지 않음. 선거때 이 교회 교인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당선이 만만치 않음. 선교도 많이 하고 특히 해외선교의 선두주자이지만, 질보다는 양적인 면에 치중하는 듯한 교회.”
저는 요즘도 35년 전 처음 읽고 무릎을 탁 친 오 헨리가 쓴 <순경과 찬송가>라는 단편소설을 이따금 떠올기곤 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 늦가을 찬 바람 불고 곧 닥칠 겨울철이 두려운 주인공은 겨울나기를 위해 급식과 숙박을 무료 제공하는 교도소행을 ‘꿈꾸며’ 딱 그 기간만큼만 형량을 받을 범죄를 저지릅니다. 길가던 여성을 희롱하여 꿈을 실현하려 하나 정작 매매춘여성인 그가 자신을 되레 반기는 등 3~4차례 실패한 후 지친 몸을 쉴 겸 어느 교회 담장에 기대 안을 들여다 봅니다. 마침 추수감사절을 앞둔 주일학교 아이들이 찬송가며 성경암송 등의 프로그램을 연습하고 있었지요. 주인공은 저도 모르게 담장 위로 몸을 올리며 연습장면에 집중했습니다. 20여년 전 자신이 교회학교에서 부른 찬송가 구절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내 인생이 왜 이래? 내일부터 당장 공사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지. 기껏 범죄나 저질러 교도서서 겨울을 편하게 나려고 했다니.”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순찰중인 경찰이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웁니다. “당신을 주거침입죄로 체포한다.”
어릴 적 부르던 찬송가를 듣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던 주인공은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교회의 부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 여리고에서 예수살렘으로 가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해준 이는 근엄한 제사장도, 그 잘난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천대받고 박해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구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김삼환 목사님, 명성교회가 목사님 은퇴하신 이후에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 고향 바로 인근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해주신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혹시 제 글 통해 불편한 느끼셨다면 이는 전적으로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하나님 가호가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2015년 10월 8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