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KBS 사장이라는 자리···고대영 후보에게 바란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후, 대통령이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KBS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고 후보자는 1985년 KBS 기자로 입사해 보도국장과 해설위원실장, 보도본부장 등을 지냈다. KBS노조는 고 후보가 사장으로 임명되면 총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고 후보는 26일 이사회에서 전체 이사 11명 가운데 7명의 지지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논평을 내고 “고대영 사장후보 선출은 KBS ’국정화‘ 선언이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고씨는 KBS 내부 구성원은 물론 시민사회가 최악의 부적격자로 지목했던 인물”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정치독립적 사장 선임을 통해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요구를 무참히 짓밟고, KBS장악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언개련은 “KBS이사회는 사장 선임의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뿌리치고 밀실에서 KBS의 독립성, 사장 선임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안도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고대영 KBS사장 후보자는 선출 직후부터 축하는커녕 회사 내부는 물론 언론계 일부의 반대에 휩싸여 있다.
이참에 KBS사장 자리를 한번 되돌아보자. 필자는 “KBS사장직은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위치한다”고 말해 왔다. KBS는 공중파 채널 2개와 사회교육방송, 해외방송, 다수의 AM, FM라디오 채널 등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해외에까지 전파하는 대한민국 문화의 첨병이다. 국민들은 시청료 명목으로 ‘준조세’를 내면서 KBS 경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같은 KBS가 80년대 중후반 ‘땡전뉴스’로 여론을 왜곡하며 시청료거부운동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낙하산 사장’ ‘대선후보 캠프 사장’ 등으로 불공정성 시비에 거의 빠지지 않아 왔다. 어떤 사장은 재임 시 청와대의 대통령 연설문 최종안 검토까지 해주는 등 정권의 시녀를 넘어 ‘정권 그 자체’ 노릇을 한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이번 고대영 사장 후보의 선출과정과 이후 반발 역시 역대 KBS사장과 정치권력이 빚어낸 자업자득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는 이사회 선출방식이 한몫 한다. 현재는 여당 및 야당 추천이사 비율이 7대4인 까닭에 여당 추천 이사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사장후보에 오르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현재 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사들이 과연 추천권자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양심과 상식, 그리고 소신에 따라’ 이사역할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그동안 KBS이사회가 의결한 사안에 대해 이사들이 추천권자의 눈치를 안 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는지 살펴보면 금세 파악된다. 역대 이사회의 표결 실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공영방송 특히 KBS이사쯤 되면 추천권자의 추천은 추천일 뿐, 사안마다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MBC나 EBS이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KBS사장의 역할로 되돌아가 보자.
KBS 내부에는 각기 다른 입장의 노조가 2개에다 직군별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번에 사장 후보로 선출된 고대영씨는 보도본부장 시절 신임투표에서 기자 80% 이 부적격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뒤집어 보면 사내 구성원들과 진솔하고 잦은 소통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의 임기 3년 동안 2016년 4월 총선과 2017년 12월 대통령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사장으로서의 역량과 신념을 평가받을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고 사장 후보는 1973년부터 6년간 초대 사장을 역임한 홍경모씨에서 이번에 물러나게 된 조대현 21대 사장까지 15명 전임 사정의 공과를 따져보게 될 것이다. 이들 역대 사장 가운데 퇴임 후 정치권으로 옮겨 ‘정권의 시녀’란 오명을 뒤집어 쓴 이가 누군지, KBS와 대한민국의 방송을 위해 헌신한 이가 누군지 고 후보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KBS의 경쟁상대는 MBC, SBS로 여기는 역대 사장들을 더러 봤다. 아침 저녁으로 시청률을 따지며 본부장들을 채근하라고 국민들이 시청료와 광고비를 KBS에 몰아주는 게 아니다. KBS의 경쟁 및 벤치마킹 상대는 일본의 NHK, 영국 BBC, 독일의 ZDF 등이다. 이들에게 배울 것은 공정성, 공익성, 공공성이다. 이미 평양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CCTV를 어떻게 당해낼 지, 그런 걸 연구하고 대비해야 할 KBS의 총책임자가 KBS사장이다. 급작스런 한반도 통일국면에서 KBS의 역할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체적,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필자는 김영삼 정부 초기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배운 두가지 점을 20년 넘게 고맙게 생각한다.
군인들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사생관(死生觀)’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비교적 정확히 판단해 실행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량있는 지휘관일수록 전임자의 공과(功過)를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안다. 공은 계승하고 과는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아무리 못난 전임자도 30~40점은 기본으로 한다. 그걸 바탕으로 자기의 역량을 조금만 더하면 70~80점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반면, 전임자의 공과를 무시하고 원점부터 시작하는 지휘관은 허덕이다 겨우 30점 턱걸이로 끝나는 것이었다.
신임 고대영 KBS사장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적으로 본인 몫이다. 열 마디 말과 약속보다 묵묵히 하나씩 실천하며 2018년 이맘 때 KBS 구성원은 물론 국민들의 박수와 환호, 아쉬움 속에 낙엽 쌓인 여의도 KBS 본관을 떠나는 KBS사장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