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또 다른 기억은 사랑하는 동생을 잃어버린 아픔이다. 입대하여 한참 군대생활에 재미가 붙을 때였다. 사천비행장이 한참 활주로 공사가 진행되던 1969년 6월 16일 교대근무를 위하여
Author: 우기복
[내고향 영멀⑨] 그때 그 시절, ‘회한’도 ‘감사’도 가득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 떠나간 사람, 남들은 떠난 사람을 잊으라 하지만 그리움이 더해간다. 6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 충청도 서천군 기산면 소재지, 사시절 마르지 않는 개울을 따라 봄이면
[내고향 영멀⑧] 평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얼굴들
작은할아버지 집에서 큰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에 ‘돌간’이란 이름의 아저씨가 살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무서웠다. 장애인이어서 어린 내게 낯설었지만 따뜻한 심성의 사람임을 훗날에야 알았다. 큰할아버지 댁
[내고향 영멀⑦] 호수돈여고 가는 길 국화빵 추억
서천읍에서 대전행 버스를 타면 벌써 코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차표를 끊어주시고 활명수같은 체증약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활명수를 먹어도 차 멀미는 마찬가지다. 서천 차부에서 출발한
[내고향 영멀⑥] 하얀나비의 두 느낌…’설레임’과 ‘괜한 걱정’
대전 호수돈여고 가는 언덕배기 국화빵집에서는 달고 맛좋은 단팥빵을 굽는다. 복숭아밭이 있는 용머리 고개를 넘으면 오리나무 짙은 그늘 아래 사범학교 미술관과 음악실이 나타난다. 음악실에서 울려나는 목관악기와
[내고향 영멀⑥] 나의 스승, 나의 노래···”그 시절 그 친구들 지금 어디에”
내게도 이따금 생각나는 스승 한 분이 계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3년을 담임하셨던 박종각 선생님이시다. 넘겨진 올백 머리에 힘이 느껴지는 표정. 매화꽃 핀 나무 아래서 지은 작문
[내 고향 영멀⑥] 서울 중앙시장 쌀 팔러간 아버지의 ‘추억’
7, 8월 장마철 개울이나 웅덩이에 나가면 살이 오른 참게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한낮 물가에 나가 통발을 대고, 물이 흐르는 물꼬에 하얀 자갈을
[오늘의 시] ‘우리동네 양서방’ 우기복
우리동네 양서방 아드 이냐. 따 이냐 두근반 세근 반 아들 이냐. 딸 이냐 두근반 두근반 햇살좋은 아침 아이 기다리는 양서방의 똥줄이 타네. 삽작에 동아줄 엮어
[내고향 영멀⑤] 서천역으로 아버지 마중 가던 그 밤길의 추억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는 그 시절을 자주 재생해 내곤 합니다.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어느새 전설이 됩니다. <아시아엔>은 젊은시절
[내고향 영멀④] “예배당 종 치던 돌간이 형, 그때 참 미안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는 그 시절을 자주 재생해 내곤 합니다.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어느새 전설이 됩니다. <아시아엔>은 젊은시절
[내고향 영멀③] “가늘고 긴 어머니 노래는 언제 들어도 구슬퍼”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는 그 시절을 자주 재생해 내곤 합니다.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어느새 전설이 됩니다. <아시아엔>은 젊은시절
[내고향 영멀②] 6.25전쟁의 아픈 기억들
[아시아엔=우기복 자유기고가]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고구려 삼천리 역사 반년···이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어 깨나라” 초성 좋은 춘매 외삼촌이 부르던 노래는 생각만 하여도
[내고향 영멀①] 고구마 반쪽의 행복···1950년대 서천 시골 아스라이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는 그 시절을 자주 재생해 내곤 합니다.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어느새 전설이 됩니다. <아시아엔>은 젊은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