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영멀⑥] 나의 스승, 나의 노래···”그 시절 그 친구들 지금 어디에”
내게도 이따금 생각나는 스승 한 분이 계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3년을 담임하셨던 박종각 선생님이시다.
넘겨진 올백 머리에 힘이 느껴지는 표정. 매화꽃 핀 나무 아래서 지은 작문 때문에 칭찬받은 기억이 있다.
공주 사범을 마치고 갓 부임하신 선생님의 열정에 우리는 중학생 될 꿈에 부풀어 있었고 후일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지으신 우리 반가를 배웠고 음악 노트 표지에 보았던 슈베르트의 굽실굽실한 긴 머리에 붉은 머플러를 한 음악가의 초상은 우리들의 이상이었다.
선생님이 늘 역설하시던 사람 인(人)자 넷의 의미를 우리는 두꺼운 체로 써서 책상 앞에 걸고 노트 맨 앞장에 써놓기를 즐겨 하였다.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사람이지”
선생님의 음악 시간은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풍금을 치실 때면 신이 났는데 그때마다 적잖은 궁둥이를 들썩이셨는데 그 반동이 클수록 음악 시간은 즐거웠다.
“공부시간은 조용히 공부를 하는 우리들의 하루생활 재미나요.
오늘도 내일도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기산의 어린이의 모범이 된다.“
그 시절 친구에 대한 우정을 알았고, 나 아닌 사람을 좋아하는 의미에 눈을 떴다.
“적은 시냇물 가에 종이배를 띄우고 푸른 물가에 오면 손에 손을 맞잡아
지난 일을 말하고 앞날을 맹세할제 새 희망에 벅차는 두 가슴은 뛰었네
생각하면 그옛날 삼년지난 옛이름 이별한 벗님네는 어디서 나를 보나.“
이 노래를 흥얼대며 나는 어느새 이별한 오래전 벗들을 세어 본다.
‘3학년때 서울로 전학 간 두원이네 집 대나무밭에 파초가 봄을 부르고 있었지.’
‘산으멀 환구 호복이 외산 최정호는 교장 마치고 대천 산다 하였지.’
‘우리 사촌 기선이 기철이는 4학년때 서울로 가고 셋이서 한반이었지.’
‘무낙골 승열이 안뜸 현복이 재복이 재넘어 누구더라 이제 이름도 잊어버린 친구가 되었으니…’
세월탓인지 기억 안에 갇혀서 안 보이는가, 무엇을 탓해야 할까. 고향으로 짧게 시상을 떠올려본다.
고향 속에 있을땐
고향 속에 내가 자라고
고향을 떠났을 땐
내 마음 속에 고향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