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영멀③] “가늘고 긴 어머니 노래는 언제 들어도 구슬퍼”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는 그 시절을 자주 재생해 내곤 합니다.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어느새 전설이 됩니다. <아시아엔>은 젊은시절 신춘문예를 두드리며 고향의 향기를 글로 담아온 우기복씨의 수필을 독자들께 전합니다. 충청도 향토색 짙는 언어와 살아오면서 채워지지 않는 순간 순간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우기복 자유기고가] 소리를 낮추어 내시는 어머니의 노래는 가늘고 길어서 언제 들어도 슬픈 목소리다.
춘궁기가 다가오는 삼월이면 어머니는 ‘다후다 치마’를 펄럭이며 흰 광목으로 싼 보따리 이고 고개를 넘는다.
무낙골 산으멀 막굴 가장굴(서천군 기산면 근동에 있는 동네) 재를 넘는 어머니 발걸음은 머리에 인 무게는 아랑곳없이 가볍기만 하다. 동네에서 구장은 몰라도 ‘영멀 구루무장사’를 모르는 이는 별로 없었다. 마음 씀씀이가 한결같고 말수가 적은 어머니는 자신에게 밑지는 일은 하셔도 남에게 손해 끼치는 일은 못 하는 분이셨다.
금강 건너 군산에 가서 물건을 받아다가 이 동네 저 동네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는 일을 하시었는데, 어머니는 젊은 날은 그 일로 보내셨다. 화장품부터 일용잡화 좀약까지 만물상이었다.
한창 유행하던 다후다 치마 저고리 세트로 입는 봄 스웨터, 아기 백일복, 돌복, 내복, 머플러 목도리, 아동바지, 스웨터···. 손님이 필요하다면 취급 품목이 되는 것이다. 쑥색 치마, 자주 고름, 흰 저고리의 어머니가 동네에 들어서면 동네 여인들은 일을 놓는다. 서로가 연락은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오는지 금세 방안 가득히 모인다.
나는 동생과 같이 동네 재빼기에 앉아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치면 길섶에 앉아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부른다.
“날뛰던 봄같은 기상을 품고/ 대륙에 뿌리 뻗쳐 바다로 뻗쳐/ 장하도다 장하도다 삼천만민아/ 아아 독립만세 독립 만만세.”
“팔월보름 이 밤은 가을 명절 밤/ 예전에 할아버지 지켜오던 밤.”
“오동나무 숲새에 높은 굴뚝에/ 동짓달 조각달만 밝아오는데/ 어머니는 어디서 무엇을 하나/ 이 밤이 깊어가도 아니오시네.”
동생은 길바닥에 고니를 그리고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이제 해는 져 어두운데 사방은 선득선득한 땅거미가 기어든다.
저기 산 말랭이 끝에서 시작되는 산소리가 금방 다가오는 것 같아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듣는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던 산소리가 저만치 산자락 끝까지 휘어잡고 있었다.
그런데 산소리 우웅우웅 하는 산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으낭산 호랑이 우는 소리 같고 다시 들어보니 그 소리는 대가리 둘 달린 뱀 울음 같기도 한데, 나는 온갖 무서운 생각들로 포위되어 꼼짝 달싹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얼레 산울음 우네”
내 목소리가 떨리었는지 아우는 침 한번 꼴깍 삼키고 말한다.
“울라먼 울라구혀 무섭깐디?”
섬뜩섬뜩한 한기가 오면서 저만치 무더기 무더기 핀 구절초 흰꽃이 섬뜩하여 보일 때 동생은 앞장서서 달려가고 있었다.
“엄니여”
어머니의 다후다 치마가 펄럭이며 산 모랭이를 돌아오는 것이 선듯 들어왔다.
내 발이 길섶에 메어놓은 소먹이 풀에 걸려 넘어질 때 아우는 잘도 빠져나간다. 이제 생각하니 아우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먼저였다.
너무 기다리다 힘이 빠졌지만, 엄니를 보니 힘이 솟았다.
산 말랭이서 솔바람 찬바람이 몰려오고 저만치 방죽에서 붕어 뛰는 소리 사방은 고요한데 물가에 돋은 갈대랑 물창포 자운영 보라꽃이 무리지어 저녁 바람을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잡곡과 쌀까지 이고 계셔서 고개도 움직이지 못하신다. 내려놓으면 다시 올릴 수 없는 무게여서 어머니는 그 걸음으로 올라가신다. 어머니는 종일 못 보던 아들을 맞는 기쁨으로 고개 아픈 것도 잊으신 듯하다.
큰아버지네 방앗간 짐자전거라도 빌려올 것을, 머슴이 눈치 보여 말 못하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