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즈음 30년 전 변호사로서 경험한 일을 쓰고 있다. 세월의 먼 저쪽으로 갔는데도 아직 기억이 선명하다. 내게 ‘대도’ 사건은 상습 절도범을 봐달라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Author: 엄상익
[대도 조세형⑫]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요즈음 바둑을 복기하듯 변호사로서 지난 사건들을 돌이켜 본다.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밥벌이를 끝냈다. 그 지겨움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돈이라는 미끼에 아가미를 꿴 물고기 신세가
[대도 조세형⑪] 부자와 권력자의 비밀금고
“그가 도둑질은 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여론의 불씨를 일으키려고 애썼다. <한겨레신문>에서 이런 사설이 나왔다. ‘대도가 다시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대도 조세형⑩] “변호사로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도’에 대한 1심의 마지막 공판정이었다. 검사가 300쪽에 해당하는 그에 대한 언론 기사를 ‘재범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제출했다. 모두가 그가 인간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범죄인이라고 판단하는 내용들이다.
[대도 조세형⑨] 국무총리와 도둑,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내가 대도에 대한 재심법정에서 교도소 내의 인권유린을 얘기하고 일부 언론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무렵 메이저 일간지의 독자란에 한 시민의 이름으로 글이 올랐다. 부산 사하구
[대도 조세형⑧]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30년 전 맡았던 ‘대도 사건’은 나에게 현실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을 가지게도 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법을 알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무대 뒤에서 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대도 조세형⑦] 장 주네 ‘도둑일기’…”도둑의 시각에서 인간을 보다”
예전에 탈주범 신창원과 만났을 때였다. 하루는 그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변호사님 저는 도망 다니면서 도둑질을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나쁜 짓을 하면
[대도 조세형⑥] 숯불지기 청년의 외침과 시인 한하운
내가 대도라고 불린 절도범 사건의 재심을 신청했을 무렵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법조인들이 모여 청계산을 등반한 후 산밑의 고깃집에서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는 현직 판사와 검사,
[대도 조세형⑤] “아, 방송시간이 다 됐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30년 전 ‘대도’라는 절도범의 재판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뛰어라 새벽’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해서 한 말씀 여쭤보려고 하는데
[엄상익의 시선] “어머니 고마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영화감독을 변호한 적이 있다. 그를 보면서 인간이 이렇게까지 파멸할 수 있나 하고 경악했다.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던 그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힌 속칭 끼 있는 감독이었다.
[엄상익 칼럼]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나는 공명심에 들떠 이러고 있나?”
30여년 전의 그 사건이 요즈음 마음속으로 쳐들어왔다. 법정에서 교도소 인권 문제를 꺼냈다가 나는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있었다. 이왕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고 기자들에게 한 사람이 교도관들에게
[대도 조세형④]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법정에서 교도소 내의 가혹행위를 폭로하자 MBC는 특집을 만들어 즉각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러나 언론마다 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았다. SBS의 저녁 텔레비전 뉴스가 있었다. 내가 맡은
[엄상익의 시선] 존엄사법…”편안하고 의연하게 죽을 권리”
국회에 계류되었던 존엄사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존엄사의 선택은 철저히 본인의 자유다. 의사나 가족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신청을 했어도 언제든지 그 뜻을 철회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대도 조세형②]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나는 참담했다. 재판장의 차디차게 비웃는 미소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떠돌아다녔다. 신문과 방송은 나를 공명심에 들뜬 별 볼 일 없는 변호사라고 비난했다. 세상은 진영논리로 나를
[대도 조세형③] 국가는 죄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다?
나는 광화문의 조선일보 건물 5층으로 올라갔다. 시사잡지 <월간조선>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구석의 책상 앞에서 백발의 편집장 조갑제씨가 돋보기를 쓰고 원고를 보고 있었다. 전부터